[김미옥의 종횡무진]

 

(김미옥 문예평론가)
(김미옥 문예평론가)

 

 

 

 

 

사람은 고향을 닮는다

 

내 친구의 별장은 포천에 있다.

혼자 있고 싶을 때 가끔 노트북을 들고 간다.

가까이 저수지가 있어 새벽엔 물안개를 볼 수 있다.

한밤중 책을 읽다가 흠칫 어두워지면 짐작한다.

산에서 나무들이 내려와 집안을 기웃거리는구나.

 

나는 그녀가 왜 포천에 별장을 지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의 고향은 포천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없다.

십년을 넘게 별장에 왔지만 나는 포천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경기도에도 개발되지 않은 이런 시골이 있구나 했을 뿐이다.

 

    ('포천', 이지상, 21세기북스, 2024)
    ('포천', 이지상, 21세기북스, 2024)

 

가수 이지상의 책 『포천』을 읽었다.

그가 오리지널 포천산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았다.

그는 불량 관광객을 앞에 둔 성실한 문화해설사처럼 자신의 고향을 열심히 설명했다.

나는 오징어도 씹고 새우깡도 먹으며 나태한 자세로 ’포천 관광 가이드‘(?)를 펼쳤다.

 

그러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1리 543번지”에서 바른자세가 되었다.

한 남자가 태어나 청년이 된 그곳은 이제 부모님을 모신 선산이 되었다.

어떤 화가는 초상화를 그릴 때 대상자의 생가를 찾아 방구들에서 황토를 채취한다고 들었다.

종이 뒷면을 황토 안료로 수백 번 바르고 말려 색이 배어 나오게 했다.

일설에 의하면 대상자의 태(胎)자리 흙은 본인의 피부색과 가장 닮았다고 한다.

사람은 고향을 닮는다.

 

’포천 촌놈‘ 이지상은 자신을 해체하듯 포천을 열어젖혔다.

나는 찾아갈 생가가 없는 서운함과 부러움으로 책을 읽었다.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포천이라는 이름이 낯선 분들께 이 책이 꽤 쓸모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천 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는 동네, 산과 산 사이를 가르는 은하수가 있는 하늘다리, 물색이 수시로 변하는 비둘기낭, 명성산이 내려오는 산정호수, 우리가 익히 들었던 장소들이 그에게 가면 이야기가 된다. 『포천』의 저자 이지상은 ’포천 도슨트‘다.

첫 장은 포천의 첫 지명인 “마홀(馬忽)”로 시작해서 지금의 “포천(抱川)”으로 이어진다.

모두 물이 흐르는 마을이란 뜻이다.

 

          (이지상 가수 겸 작가. 사진=교보문고 제공)
          (이지상 가수 겸 작가. 사진=교보문고 제공)

갑자기 포천시 이동면의 <미미향> 양장피가 먹고 싶다.

시골임에도 예약하지 않으면 밖에서 벌벌 떨어야 하는 곳

어이없지만 겸손하게 기다려야 하는 곳

국도변 길가에서 파는 명성산 비가림 포도의 달콤새콤한 맛

세 자매가 하는 구수한 청국장집

 

포천에 오시려면 이지상의 『포천』을 읽고 오시라.

거기 이지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