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평단] 재현 너머 정동의 언어
최진영 소설 '구의 증명'을 말한다

방민호 (편집위원ㆍ문학평론가)

 

7.

"구의 증명"은 물론 지극한 사랑의 소설이다. 어려서부터 결핍과 외로움 속에서 성장해 온 '담'과 '구'는 그 공통성으로 인해 서로를 완전히 믿을 수 있는 동반자가 된다. 여덟살, 아홉살 때도, 열두살 때도, 중학생이 되어서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간격을 느낄 수 없는 존재처럼 성장한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두 사람은 첫 키스를 하고, '구'에게 '진주' 누나가 생겨 서로가 잠시 멀어져 있던 사이에도 '담'은 '구'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을 '안다'. '구'는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고, '담'의 이모가 세상을 떠나고, '담'이 마트에서 일하고, '구'가 전역하고, 두 사람은 마침내 같이 산다. 두 사람은 이것으로 완전한 관계 속에 놓일 수 있었건만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구'의 행방불명된 부모로부터 물려진 사채업자의 빚이다. 사채업자들을 '구'를 나이트에 집어넣고 호스트바에서 일하게 한다. '담'은, "구의 생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구의 인간다움을 좀먹고 구의 삶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돈이 전쟁이나 전염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157쪽)한다. '담'은 자신에게서 떨어지라는 '구'의 말을 거부하고 둘은 사채업자를 피해 여러 도시와 마을을 떠돌며 숨어 산다. 도피의 끝에서 '구'는 다시 그들에게 잡혀갔다 돌아왔고, 다시 그들에게 붙잡혀 린치를 당하던 끝에 상처와 멍이 가득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담'은 사채업자에게 쫓기다 달려오는 차에 치여 죽음을 맞이한 '구'의 시신을 업고 택시로 집으로 데려와 카니발리즘의 지극한 의식을 치른다.

 

8.

"구의 증명"의 소설적 구성은 치밀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이 이야기에서 '구'와 '담'의 성장기는 '진부하다.' 두 아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빈번히 들어봄직한 이야기들이고, '구'의 성장사에 들어 있는 학교와 공장을 오가는 이야기, '진주' 누나와의 설익은 연애담, 더구나 '구'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끈질긴 사채업자의 추적이라는 설정 등은 너무나 유형적(typical)이다. 외롭게 자란 '담'의 이야기까지 포함에서 이런 설정들은 치밀하다기보다 '평균적'이고. '대표적'이어서 총체성 이론으로 무장한 리얼리즘의 '전형' 개념을 충족시킬 수 없다.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이 소설은 리얼리즘이 일종의 알레고리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리얼리즘은 대표적 사례로써 그 이야기를 포함하는 환유적 전체의 본질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 한다. "구의 증명"에서 증명되고 있는 것은 '구'를 죽음으로 내몰고 '담'를 끝모를 상실에 내리꽂는, 이 지상세계의 냉혈함이다. 이 냉혈은 "돈"의 지배로부터 오는 것이며 따라서 실체적 모습을 보이지 않는 '사채업자'에 의해 대표된다. '구'와 '담'은 이 세계의 가난한 자, '민중'(?), 노동자 계급일 수도 있고, '사채업자'는 자본의 논리이자, 자본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구의 증명"에 관한 하나의 사실은 자본주의적 현대성이 여전히 가난한 자들 위에 군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알레고리적 우화라는 점일 것이다.

만약 이러한 것뿐이었다면, "구의 증명"은 한갓 낡은 이야기에 지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재료들, 모티프들은 충분히 낯익고도 낡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적 '전형'들의 움직임들만이었다면 이 소설은 문제적일 수 없었을 것이다.

 

9.

이 소설 전면에 흐르는 '원한'과 '슬픔'의 감정, 그리고 이를 자아내는 이 세계의 냉혈함을 뛰어넘고자 하는 강렬한 '염원', '희구'의 감정들, 이런 감정의 흐름을 가리켜 '정동'(affect)라 부를 수 있다면, 이 소설은 현대적 자본주의의 불모성을 관념적 메시지로 전달하는 대신 이 세계를 살아가는 대표적 인물 '구'와 '담',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의 감정의 흐름을 충만하게 표현해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반복적으로 논의되어 왔듯이, 들뢰즈는 "무엇인가를 재현하는(표현하는) 사유의 양식"으로서의 관념 대신에 "비재현적인 사유양식"으로서의 정동에 기초한 예술론을 펼쳤다.(연효숙, '들뢰즈에서 정동의 논리와 공명의 잠재력', "시대와철학", 2015, 26권 4호, 197쪽, 참조) 나는 이 난해한 정동론을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를 논의한 "감각의 논리"(민음사, 2008)나 카프카 소설에 관한 변론서라 할 "소수 집단의 문학을 위하여"(문학과지성사, 1992)를 통하여 겨우 윤곽을 잡을 수 있었는데, 그러나 이것은 재현 중심적인 관념적 리얼리즘 이론을 예술 자체의 본성이랄까 본질에 입각해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은 본디, 본 것을 다시 보게 해주는 것이 아니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인데, 정동론은 소설을 바로 그와 같은 창조의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정동론이 소설과 같은 언어의 예술, 즉 지극히 무거운 관념의 예술을 완전히 설명해 준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구의 증명"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후 가장 본격적인 정동의 '노동ㆍ민중' 소설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이 소설은 보고적인 묘사 대신에 세계 상황에 처한 세 인물의 원한과 슬픔과 희구를 간결하고도 서정적인 문체에 실어 보여줌으로써, 유형적 설정과 건조한 문체로 세계 인식을 실어나르는 흔한 소설들과 자신을 스스로 구별짓는다.

지금도 한국 소설은 자본주의 메커니즘의 비정규직, 해고, 실업 문제들, 이중 억압 속의 여성 같은 문제적 양상을 '리얼리즘적'으로 재현하는 작은 이야기들로 넘쳐나고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착한 메시지를 담은 이 재현적 이야기들과 "구의 증명"은 확실히 달라 보인다.

'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번개 맞아 죽은 고목 같은 집에서 까만 청설모처럼 살아야 한다고. 지상으로는 최대한 내려오지 말고 고목 안 고목 위에서만 살면 아무도 우리가 사람인 줄 모를 거라고."(84쪽) '담'은 또 이렇게 말한다. "구를 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먹지 않고 구와 함께 동동 유리 돛단배가 될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그 고요와 암흑에 담겨서, 인간적인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아름다운 은하를 구경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이 천만 년 만만 년 뒤라면. 그럼 나는 구의 몸을 업고 지구를 떠날 수 있을 텐데."(134쪽)

이 비유의 언어에, "구의 증명"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비밀들이 담겨 있다. 돌이켜 보면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또한 그러한 비유의 언어 구성체였다.

살아서 짐짝 같은 취급을 받는 노동자의 삶이 살아 있는 생명 그 자체로서 존중될 수 있어야 한다는 ''구의 증명"의 메시지는 우화적인 단순미를 함축한 비유의 알레고리에 깃든 비극적 희구의 정동을 통하여, 현재의 젊은 멀티튜드(multitude다중)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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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편집위원ㆍ문학평론가 )
(방민호 편집위원ㆍ문학평론가 )

서울대 국문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1994년 『창작과 비평』 제 1회 신인 평론상수상하면서 비평 활동 시작.문학 평론집으로『이광수 문학의 심층적 독해』, 『문학사의 비평적 탐구』,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 『행인의 독법』, 『문명의 감각』등이 있다.2001년 『현대시』로 등단,시집으로 『숨은 벽』, 『내 고통은 바닷속 한방울의 공기도 되지 못했네』,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가 있다.2012년 『문학의 오늘』에 「짜장면이 맞다」를 발표,소설창작을 시작해장편소설『대전스토리, 겨울』, 『연인 심청』이 있으며 창작집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이 있다. 산문집으로 『경성에서 신의주까지』, 『서울문학기행』, 『명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