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봄의 전령사는 존재 그대로 귀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문용주의 생활 명상 25]

봄이 완연하다. 이월 말 삼월 초와는 상당히 다르다. 겨울 냉기가 누그러지고 기온이 올라 따사한 바람이 분다고 봄이라 하지 않는다. 산기슭에 아직도 남은 눈이 녹는다고 봄이라 하지 않는다. 줄기에 푸른 물이 오르고 일찍 피어나는 산수유 매화나무에 움이 트고 복수초 변산바람꽃 동강할미꽃같이 산과 들 이름 모를 곳에 야생하는 풀에 꽃이 핀다고 봄이라 하지 않는다. 비 온 후 아파트와 보도 사이에 심은 나무 울타리 가지가지마다 연두색 이파리가 돋아오른다고 봄이 왔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언 마음이 녹아 두꺼운 옷을 벗고 얼굴이 화사하게 밝아지고 서로 손을 잡고 경복궁 창경궁 같은 고궁으로 나들이하면서, 더 이상 꼭꼭 닫은 문과 이중으로 두껍게 막은 창으로 틀어막은 집 속에서 보내야 하는 추운 겨울로 되돌아가지 않아야 봄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의 봄보다 사람의 봄은 그만큼 느린 것 같다. 중국의 시인 동방규(東方虬)가 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즉 봄이 왔으나 봄같이 않다고 했듯 마음보다는 더 앞선 계절의 신호를 보고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물론, 무엇으로도 봄을 부인하기 힘들 때 비로소 봄이라 하지 않는가 싶다. 아직도 기모와 두꺼운 패딩으로 마음을 가릴 만큼 추운 사람의 봄은 그만큼 늦다. 

동강할미꽃
동강할미꽃

마음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사계절이 있다. 따사하고 덥고 서늘하고 추운 변화가 수시로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끊임없이 변한다. 마음먹고 새롭게 시작하는 봄이라 하더라도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여름이 없으면 울창하게 무르익지 못할 것이다. 단단하고 풍성하게 맺히는 열매를 수확하고 이루는 것이 없으면 뻥 뚫린 마음처럼 허전한 가을이 될 것이다. 비록 지난 계절에 보낸 세월이 길고 힘들었어도 작은 보람이라도 남아 있다면 마음에 불씨로 삼아 추운 겨울을 애써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일 년 내내 마음을 보며 보낼 수도 있고 평생을 마음에 기대어 사계절로 보낼 수도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마음이 모두 만드니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삶이 온통 좌우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봄은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일 것 같다. 늘 봄같이 생기있고 따뜻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을 일찍부터 가지고 살면서 이를 데우지도 식히지도 얼리지도 않게 한다면, 누구와 함께 있어도 시골집 방바닥처럼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히 채워 위로하고 격려하며, 사랑하고 칭찬하며 한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온갖 색깔의 꽃은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꿀을 먹이고 꽃가루 선물을 주어 이웃에 사는 나무에게 가을이 되면 사과 배 같은 맛있는 열매를 맺게 해 줄 것이다. 모두 봄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여름만 있어도 부족하고 가을만 있으면 이루어질 수 없으며 겨울에는 아예 시도조차 해 볼 수 없을 것이다.  

올해는 봄이 어렵지 않게 온 것 같다. 그만큼 추위가 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혹독한 겨울 추위 후에 맞이하는 봄만 하지 못한 것은 계절의 변화가 이전 같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 변화 또한 이전 같지 않은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아파트 난방 덕에 추위를 덜 느끼면서 보낸 탓이 크리라고 여겨진다. 더 이상 거친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야생화를 예쁘지 않게 여기는 시대로 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 그지없다. 자연 속에 함께 사는 풀 나무 동물 사람 모두 생명이 있고 되살아나듯 활기를 찾는 봄이라 같은 생명을 두고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존재 그대로 귀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에 맞지 않는 명사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나 부사로 치장하거나 부추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여기면서 저마다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문용주] 참살림아카데미/참살림수행원 원장, 시산문학작가회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