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우이위논어(愚以爲論語) 8]

 

                               필야광견호必也狂狷乎

 

                                                     이인우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

 

 

子曰: “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 狂者進取, 狷者有所不爲也.”
자왈: “부득중행이여지, 필야광견호! 광자진취, 견자유소불위야.”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더불어 중용을 행할 사람을 얻지 못한다면, 반드시 광자(狂者)나 견자(狷者)와 함께 하겠다! 광자는 진취적이고, 견자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 -자로 편

중행(中行)-중용(中庸)을 따르는 것, 행실에 중정지도(中正之道)가 있는 것을 말한다. 맹자는 중도(中道)라는 말을 썼다. 여기에서는 언행이 중용과 합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광(狂)-맹자에 의하면, 뜻이 크고 원대하나 행동으로 실현되지는 못하는 사람이다.

견(狷)-맹자에 의하면, 더러운 것을 못참는 사람이다. 광견 두 자의 함의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또 다양하므로 여기서는 따로 논하지 않겠다. 유소불위(有所不爲)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은 결코 하지 않는 사람이다.

공자가 말하였다. “중용을 아는 사람과 더불어 함께 하지 못할 바에는, 뜻이 크고 분방한 사람,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신을 깨끗이 하는 사람과 함께 하겠다! 이상이 높은 광자는 진취적이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를 견지하는 사람은 해서는 안될 짓은 하지 않는다.”

이 구절에 대해 가장 먼저 해석을 내놓은 사람은 맹자이다. “공자께서 어찌 중도의 인물을 바라지 않으셨겠는가마는, 반드시 얻을 수 없음도 염려했기에 그 다음을 생각하신 것이다”(<맹자> ‘진심 하’)

맹자는 광자(狂者)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 뜻이 커서 큰 소리로 말하기를 ‘옛사람이여, 옛사람이여!’ 하되, 그 행실은 말을 가리우지(따라가지) 못한다.”(其志嘐嘐然, 曰 ‘古之人, 古之人.’ 夷考其行而不掩焉者也) 광자들은 지향하는 바가 원대하여, 말끝마다 옛사람의 가르침을 들어 이상을 토로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것에 부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견(狷. 맹자는 견(獧)이라고 썼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 광자를 얻지 못하면, 그 다음으로는 더러움을 혐오하는 선비를 얻고자 하신 것이다. 견은 뜻이 굳센 사람이니, 이것이 그 다음가는 사람이다.”(狂者又不可得,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 是獧也, 是又其次也) 더러운 삶의 방식을 혐오하는 사람이 견자이니, 광자 다음가는 사람이다.

광견지사(狂狷之士)는 미덕을 두루 갖춘 사람은 아니며, 우열장단이 모두 명확한 사람이다. 무골호인의 호호선생(好好先生)인 향원(鄕原)의 부류는 단지 광견의 단점과 결점만을 꼭 집어 지나치게 비난한다. 광자는 언행이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견자는 오만한 외곬수(落落寡合)라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걸핏하면 개똥철학을 늘어놓으며, “기왕 태어난 세상, 세상에 맞춰 사는게 좋지 아니한가(生斯世也, 為斯世也, 善斯可矣)”라고 위선을 떤다. 공자처럼 향원을 아주 혐오한 맹자는 향원의 행태를 세세히 열거하면서 “덕의 적(德之賊)”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공자는 “중용은 매우 어려운 것”임을 잘 알고 있어서, “지자(知者)는 지나치고, 우자(愚者)는 미치지 못한다” “현자(賢者)는 넘치고, 불초자(不肖子)는 모자라기 때문에”(<예기> ‘중용’) “부득중행이여지(不得中行而與之)”라고 한 것이다. 동시에, 공자는 중용, 중행을 실천하는 것처럼 하면서 사실은 무원칙하고, 무개성하고, 시류에 기회주의적으로 영합하는 기만성이 큰 사람들의 행태를 통탄한다. 그래서 공자는 이런 부류와는 다른 광견을 선택하는 것이다.

비록 광견이 이런저런 약점과 결점을 지니고는 있지만, 광자의 주류는 “진취적”이며, 진보 지향이다. 견자의 주류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알기에(有所不爲)”, 세속에 물들지 않고 순수를 지키고자 한다. 단점과 결점이 다 있지만, 결점이 장점을 가리지 못하는, 우리들이 현실 속에서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 바로 광자이며 견자이다.

 

   (중국 산둥성 취푸(곡부)시 공묘 입구에 해당하는 금성옥진방(金聲玉振坊). 명나라 때인 1538년에 지은 것이다. 금성옥진은  만장편에 나오는 말로, 맹자가 공자를 찬양하며 한 말, “공자는 선대 현인을 집대성하였다. 집대성은 금성옥진이다(孔子之謂集大成. 集大成也者, 金聲而玉振之也).”에서 이름을 땄다. 공자가 고대 성인들의 善(금성)과 德(옥진)을 모두 모아놓았다는 뜻이다. 사진=이인우)
   (중국 산둥성 취푸(곡부)시 공묘 입구에 해당하는 금성옥진방(金聲玉振坊). 명나라 때인 1538년에 지은 것이다. 금성옥진은 만장편에 나오는 말로, 맹자가 공자를 찬양하며 한 말, “공자는 선대 현인을 집대성하였다. 집대성은 금성옥진이다(孔子之謂集大成. 集大成也者, 金聲而玉振之也).”에서 이름을 땄다. 공자가 고대 성인들의 善(금성)과 德(옥진)을 모두 모아놓았다는 뜻이다. 사진=이인우)

공자가 말한 광견의 의미는 현대인에게도 매우 큰 계시와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삶의 끝에서-양장(楊絳)선생 백세문답’이란 제목의 인터뷰 기사(<문회보> 2011.7.8.)를 읽은 적이 있다. 내용 중에 첸충슈(錢鍾書. 1910~1998) 선생의 광과 견에 대해 회고한 대목은 자못 의미하는 바가 있었다. (전종서는 동서문학에 두루 능통했던 현대 중국의 유명한 문학 연구자이자 작가이다. 양장(1911~2016)은 그의 부인이다. 칭화대 교수를 지낸 양강 역시 저명한 여성 문필가이자 번역가였다. 이 부부는 문학가로서 명예와 부에 초연한 삶을 살아 많은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양장 선생의 말. “사람들이 첸 선생을 ‘광(狂)’이라고 느낀 것은, 대체로 그가 <마오쩌둥 선집>을 번역하면서 마오 주석의 실수나 오류를 숨기지 않고 낱낱이 밝혀냈던 일에서 연유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얼마간은 첸 선생을 무서워했는데, 그의 학문하는 방식이 지독하게 엄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는 것이 엄청나게 많은데 천성은 솔직해서, 말을 가리는 법이 없고, 타인을 비평할 때도 곧이곧대로 했어요. 그럴 때는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는 법도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러나, “첸충슈 자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광(狂)이라고 하지만, 사실 나는 견자(狷者)야.’라고. 견자란, 하지 않는 바를 안다(有所不爲)는 것 아닙니까? 첸 선생이 마오 선집 번역 작업을 했던 것으로 말하면, ‘공을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不求有功), 다만 과오가 없기를 바란 것(但求無過)’입니다. (공을 세우려고 번역을 맡은 것이 아니라 마오의 선집에 실수나 오류가 없도록 하려고 했다는 말이다) 그는 순순히 자신을 하나의 사용하기 편리한 도구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저 묵묵히 일만 하면서, 번역 작업에 관한 자기의 주의 주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판공실의 부인’으로 부르게 했지요. 그는 그렇게 사용하기 편한 사람이었지만, 스스로 주도하지 않았습니다.” “첸충슈는 어떤 당파에도 가담하지 않는 자세를 평생 견지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 살 것을 작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소견으로, 첸충슈 선생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선생은 그 자신이 말한대로 분명 견개지사(狷介之士)였다. 그러나 광사(狂士)의 면모도 얼마간은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한 사람에게 견이 주(主)가 되고, 광이 보(輔)가 되기를 8대2나 7대3쯤이라면, 이는 보기드문 덕과 재능의 겸비이리라, 하였다.

 

<노트> -------------------------

狂과 狷. 중용의 도리에 맞게 행동하는 자 다음으로 공자가 제자를 삼고 싶은 인간형이다. 세간에선 “미친 놈”이거나 “외로운 늑대”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공자에게는 “불가능을 비웃는 자”이고, “불위(不爲)의 본질을 아는 자”이다. 공자가 장차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일에 나설 때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주희 “광자는 뜻은 대단히 높지만 행동이 아직 뜻하는 데까지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며, 견자는 지식은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지만 도를 지키는 데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이토 진사이 “막중한 도를 짊어지는 일은 도에 맞게 행동하는 사(士)가 아니면 할 수 없다. 이런 선비를 발견할 수 없다면, 반드시 진취적인 사(狂)나 하지 않는 것이 있는 사(狷)를 찾아 그들을 가르치고 싶다. 광자는 뜻과 의지가 높고 뛰어나 성인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길 원하므로 도에 나아갈 수 있는 기량을 가진 사람이니 도에 맞게 행동하는 사의 다음이다. 견자는 행실이 깨끗하고 절개가 굳세 털끝만큼이라도 불의한 일은 감히 하지 않으며, 또 도를 지킬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있으니 광자 다음이다. 이 점이 공자가 그들을 선택한 이유이다. 보통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위축되어 떨쳐 일어날 수 없으므로 이 막중한 도를 감당할 수 없다.”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연구원)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연구원)

저술·번역가.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한 뒤 한겨레 문화부장, 편집부국장, 제작국장 등을 지냈다. 2016년 『삶의 절벽에서 만난 스승 공자』(2016)를 짓고, 2022년부터 일본 교토 리쓰메이칸대(立命館大) 객원연구원으로 논어 등 동양고대사상을 공부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음식천국 노회찬』(2021) 『서울백년가게』(2019) 『조작간첩 함주명의 나는 고발한다』(2014),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 ― 한겨레 10년의 이야기』(공저, 199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