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의 종횡무진]

 

(김미옥 문예평론가)
(김미옥 문예평론가)

 

 

 

 

 

 

 

 

어떤 산문정신

 

어떤 이의 책은 저자의 전작을 부르게 한다.

시인 임동확의 『시는 기도다』를 서점에서 3주 전에 구입했는데 서너 번 읽어야 했다.

문장이 마치 눈보라 치는 운동장에서 차렷 자세로 묵묵히 서 있는 학생 같았다.

말이 산문집이지 대중서와 학술서의 경계에 있었는데 나는 이 책이 쓸쓸했다.

 

왜 문장이 서 있는 걸까?

왜 물로 흐르지 아니하고 우두커니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나는 글을 쓸 때 ”문체는 평이하고 물 흐르듯 순조로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그의 시집들을 구해서 읽고 『시는 기도다』를 다시 펼쳤을 때 운동장에 서 있던 학생이 내게로 걸어와 입을 열었다.

 

그는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였다.

그가 쓰는 문장은 함부로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한 작가를 이해한다는 것, 평생을 관통하는 그 무엇을 찾아낸다는 것, 지독한 포옹이었다.

그의 문장이 “당면한 현실과의 치열한 대결이자 엄정한 대화의 산물”임을 시인했다.

 

네가 깊고 푸른 심연의 난간에 그나마 성한 영혼의 한 발을 걸친 채 그믐달처럼 매달려 있을 때/ 내가 사랑한 건 결국 너의 전부가 아닌, 행여 저조차 끝없이 못 믿어 온 한낱 난파선 같은 나의 의지 (시집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 표제 시 부분)

솔직히 나는 그의 산문집보다 시집을 말하고 싶은 유혹에 좀 시달렸다.

 

(임동확, '시는 기도다', 푸른사상, 2023)
(임동확, '시는 기도다', 푸른사상, 2023)

그러나 어떤 책은 열권 분량을 한 권에 담기도 하는 것이니 압축을 푸는 순간 머릿속이 홍수를 만난 듯 생각이 넘실거린다.

『시는 기도다』는 4부로 나뉘어 모두 40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글 한 편, 한 편이 책 한 권을 읽은 듯 사유가 깊고 넓다.

 

첫 번째 글, 「시가 터져 나오는 자리」의 문장이다.

“기도가 신을 불러냄으로써 신을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 듯이 시는 그게 무엇이든 부름으로써 불림을 당한 채 더욱 사물 가까이에 다가선다. 그리고 시인은 그런 점에서 뭔가를 부르는 자이자 어디론가 흘러가는 자이다.”

아마 나라면 ‘기도가 신과 함께이듯 시는 당신과 함께’라는 설레발(?)을 쳤을 것이다.

 

임동확의 문장은 허술하지 않다. 할 말이 많은데 시간이 없는 사람처럼 지면의 한정성이 그의 글을 함축 언어로 치우치게 했을 것이다.

나는 <김수영연구회>에서 나온 『이 무수한 반동이 좋다』나 『김수영에서 김수영으로』에서 그의 글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여러 시인에 대한 소논문성의 글은 단단하고 진지해서 내 생각을 꿈틀거리게 했다.

그러나 『시는 기도다』의 핵심은 뭐라고 해도 시인의 '시작 노트'에 있는 것 같다.

특히 「유리잔이 깨지는 순간과 ‘시적인 것’」을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시가 찾아오는 순간 ‘노래에 유리잔이 금이 가듯’ 세상이 공명한다.

그의 시 「가수의 노래에 술잔이 금가고」는 “단지 스치듯 마주쳤을 뿐인데도/ 결코 비켜가지 못했던 생의 한순간처럼” 그렇게 태어났다.

 

          (임동확 시인. 사진=문학뉴스 DB)
          (임동확 시인. 사진=문학뉴스 DB)

『시는 기도다』는 시에 대한 독자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

진지한 문장은 노골적인 감성을 부끄러워하는 시인의 순수함으로 느껴진다.

소장해서 두고두고 읽을 책인데 이런 산문집, 참 오랜만이다.

시를 사랑한다면, 시인을 꿈꾼다면, 이 책은 또 다른 이정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