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판결 너머 자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 바탕 ‘공적 이성’의 합의에 무게

(『판결 너머 자유』, 김영란 지음, 창비, 2024년 3월)
(『판결 너머 자유』, 김영란 지음, 창비, 2024년 3월)

[문학뉴스=남미리 기자] 최근 우리 사회의 여러 현안을 두고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극렬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오로지 이기기 위한 목소리만 난무할 뿐 정치의 근간인 화합을 외치는 사람은 어디서도 보기 어렵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법관이자 ‘소수자들의 대법관’이라고 불리는 김영란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최근 펴낸 『판결 너머 자유』(창비)는 책의 부제처럼 “분열의 시대, 합의는 가능한가”를 물으면서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그동안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판결과 정의』 등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되짚는 저서를 꾸준히 발간해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도 대법원 판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민주주의 발전에 힘입어 과거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느끼면서도, 실제로는 많은 사안에서 여론의 향방이 극단적인 대결로 치달아 다양한 목소리의 설 자리는 오히려 좁아지는 모순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합의라는 가치와 그 가능성이 절실한 지금, 저자는 그 실마리를 대법원의 전원합의체가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찾는다. 우리 사회의 ‘가장 올바른 결론’을 내기 위해 법관들이 고민하고 토론한 경로가 판결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상반되지만 각각 합당한 신념들이 공존하는 사회, 불일치의 일치를 이루는 사회는 어떻게 해야 가능할지를 모색한다.

전원합의체는 법원을 이루는 판사 전원 혹은 대부분이 참여해 사건을 심리하는 구성체를 일컫는다. 매우 복잡하거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재판일 경우, 또 재판부에서 의견 일치가 되지 않을 경우에 진행된다. 구체적 사례로 1부에서는 제사주재자,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등 상반되지만 합당한 신념 간 합의를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살핀다. 2부에서는 그러한 중첩적 합의의 과정에서 무엇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기본적 자유를 양심의 자유, 소수자들의 기본권 등으로 나눠 설명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성전환자 성별정정, 미성년자 상속 등 이 책에서 다루는 사건의 판결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각 사안에 대한 다수의견, 반대의견, 별개의견, 보충의견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신념과 가치가 법관의 의견을 통해 법원에서 치열하게 논해지는 과정은 ‘중첩적 합의’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짐작케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세기 후반 가장 중요한 정치철학자로 『정치적 자유주의』 『정의론』 등의 고전을 남긴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의 생각을 가져온다. ‘중첩적 합의’와 ‘공적 이성’ 등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 역시 롤스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낡은 이론을 그대로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이 시대 가장 첨예한 사안, 현재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생각 틀로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롤스의 이론에 따라 유일하게 가장 이성적인 기관인 법원, 즉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는 ‘공적 이성’을 갖춘 정부 부서로서 선택보다 절충과 조율, 중첩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실패하지 않음으로써 다원사회의 바람직한 정착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영란(金英蘭) 저자는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부터 판사로 일했다. 2004년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대법관이 되었고,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우리 사회의 정의 확립에 큰 영향을 미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입법에 힘썼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2019년 9월부터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 청조근정훈장, 한국여성지도자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은 책으로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판결과 정의』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