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한국문학 현장 지킨 결실 2권 펴낸 최재봉
작가와 작품, 문단 이슈들 정선한 '이야기는 오래 산다'
한 우물에서 오래 길어 올린 알토란 문학 이야기 '탐문'

[조용호의 문학공간]

 

한 시대를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개인의 기록이 아니라 한 분야에서 명멸했던 많은 것들을 오롯이 지켜보면서 공적인 매체에 담아내는 작업에는 특별한 자질과 인내가 필요하다. 시대 정신은 물론 인간의 내면을 기록하는 문학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이 일에 만 30년 동안 복무해온 최재봉의 ​보고 2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문학담당 기자로 살아오면서 썼던 다양한 작품과 문인, 문단 이슈들을 담아낸 '이야기는 오래 산다'(한겨레출판),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파내려가 길어 올린 다채로운 문학 이야기 '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비채)가 그것이다.

 

(만 30년 동안 한국문학을 가까이서 지켜본 결실을 2권에 담아낸 최재봉. 사진=조용호 UPI뉴스 문학전문기자)
(만 30년 동안 한국문학을 가까이서 지켜본 결실을 2권에 담아낸 최재봉. 사진=조용호 UPI뉴스 문학전문기자)

'탐문'이란 말에는 문학에 탐닉하며 문학을 탐구한다는 이중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 그 결과 크게 두 가지 결을 지니게 되었다.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맛본 즐거움과 행복의 경험을 담은 글들이 하나의 줄기를 이룬다면, 문학의 이면과 비밀을 파고든 글들이 다른 한 줄기를 이루었다. 즐거움과 행복의 경험을 독자와 나누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한겨레신문 공채 1기로 입사해 사회부와 국제부를 거친 뒤 1992년부터 문학 담당을 시작해 2022년 정년을 맞아 문학을 내려놓은 최재봉은 문학 기자 삼십 년을 결산하는 글을 자유롭게 써보라는 권유를 받고 '탐문'을 연재했다. 이 연재물과 에필로그 격으로 따로 쓴 '원고는 불에 타지 않는다!'까지 탐닉하고 탐구한 결실이 책으로 묶였다.

제목, 문장, 생활, 작업실, 마감, 퇴고에 얽힌 1부 '문장은 그것을 쓴 사람을 드러내고, 그것이 읽히는 사회를 비춘다'를 시작으로 독법, 문단, 해설, 문학상, 표절을 다룬 2부 '문학이 위기라는 아우성 속에서'로 이어진다. 첫사랑, 모험, 똥, 복수, 술, 팬데믹, 유토피아를 다룬 3부 '초월하거나 도피하거나'에 이어 작중인물, 우정, 부캐, 독자, 편집자, 사라진 원고 이야기를 담은 4부 '우리는 모두 절대자의 피조물 혹은 연극 무대의 배우가 아닌가'로 에필로그와 함께 끝을 맺었다. 무엇보다 꼼꼼하게 방대한 자료를 챙겨 다양하고 깊은 독서 편력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문학 이야기를 진설한다는 점에서 유용한 '문학 참고서'로 기능할 만하다.

문학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종이신문 역시 생존의 기로에 놓여 있다. 같은 활자 매체로 문학과 신문은 어쩌면 같은 운명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30년 동안 종이신문에서 문학을 담당해온 나로서는 더 늦기 전에 정년을 맞게 된 것이 일면 다행스럽다 싶기도 하다. 종이신문 문학 담당 기자의 정년퇴직이란 어쩐지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주지 않겠나.

신문에 쓴 기사와 칼럼을 위주로 하되 외부 지면에 실린 글들을 포함해 1990년대부터 2000년대를 열어온 '한국문학 30년'의 현장을 기록한 '이야기는 오래 산다'는 영문학자 도정일의 인문에세이 한 대목을 떠올려 제목으로 썼다. 도정일은 인간이란 이야기의 우주 속에 태어나 살아가는 동물인 '이야기하는 원숭이'라고 정의했거니와, 의미 없는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인 이야기의 대표가 바로 문학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 정신이 관류해온 30년을 작가와 작품, 쟁점과 인물, 칼럼, 서평, 부고, 북에서 만난 작가들로 나누어 촘촘하게 담아냈다.

 

-한국문학 30년을 관통해 온 소감은?

"문학을 좋아하는 기자로서 30년 동안 문학 담당을 해온 것은 개인적으로는 행운이었고 행복했다.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보자면 문학은 전체적으로 작아지고 약해진 30년이 아니었나 싶다. 이즈음 외국에서 문학상을 받고 한국문학이 선전하면서 K-문학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데, 시일이 지체됐을 뿐이지 당연히 와야 할 게 왔다고 생각한다. 한국문학의 내실이 더 훌륭해졌는가 본다면 그런 거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의제나 논제, 어떤 테마를 제시해주는 작가와 작품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다. 테크닉은 현란해졌을지 모르겠지만 무게감이 좀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

-문학 기자의 '족쇄'에서 벗어난 상태인데 자유롭게 한국문학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이들 느끼고 있겠지만 너무 쏠림이 심하다. 예전에는 여성 작가가 드물고 남성들 판이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여성 작가들이 압도적이다. 그만큼 잘 쓰기 때문이겠지만 남성작가들이 반대로 좀 위축돼 있다. 역량의 차이도 있겠지만 '미투' 이후 남성들이 글을 쓰는데 자기 검열을 하면서 고전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남녀 문제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 이런 것이 득세하면서 정치적 윤리적 도덕적으로 올바른 관점과 태도와 표현을 의식하다 보니, 도덕 교과서처럼 졸아드는 느낌이다. 다른 예술도 그렇지만 문학이라는 것은 금기를 깨부수고 불가능을 상상 속에서라도 가능하게 하는 맛이 있어야 되는데 정치적이든 성적인 차원에서든 너무 위축돼서 여지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파오며 길어올린 '탐문'의 문학 이야기들이 알차다. 특별히 더 애착이 가는 이야기는?

"사실 하나하나 다 애정이 가는데, 굳이 거론한다면 '모험'이라는 항목에 담아낸 소년 모험 소설 이야기다. '15소년 표류기' '피터팬' '톰소여의 모험' 같은 이야기를 어릴 때 읽으면서 처음 문학적 경험을 했다. 실제로 세 소년 주인공을 등장시켜 삼총사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 속 모험을 연작 형식으로 초등학교 때 직접 써보기도 했다. 피터팬은 늙지 않고 계속 소년 상태로 있는데 모두 어른이 된 친구들을 만나 슬피 울었다는 대목을 쓸 때는 속으로 울컥했다.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타락한다는 의미이고, 초기에 처음 가졌던 가치 같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빼앗긴다는 느낌도 들고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이야기는 오래 산다'에 담아낸 한국문학 30년의 기록들 중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이슈는?

"사건으로 보자면 표절 파문이 큰 것이었는데, 굉장히 신랄하게 특정 작가를 가혹하게 비판한 것이 좀 걸리긴 하는데 없는 사실을 쓴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그 작가와 당시에 출판사와 같이 연결된 구조, 이런 것이 문제가 있다고 봤고 그래서 쓴 것이었다. 누군가는 '탐문'에 쓴 글을 보고 '최재봉은 표절을 옹호하는 거냐'는 댓글을 달았던데, 표절이라는 게 단순히 범인을 잡아내듯 적발하고 단죄할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맥락이 있으니 문학적으로 토론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쓴 거였다. 팩트로서의 표절에 대해서는 지적을 하고 비판하고 이럴 필요가 있지만, 동시에 근본적인 차원에서 좀 더 문학적인 차원에서 어디까지가 표절이고 표절은 도대체 뭔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파문 당시에는 너무 다급하게 상황이 흘러갔고 또 기자로서는 그때그때 숨 가쁘게 현상을 중계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좀 거친 호흡으로 썼는데, 여유를 가지고 거리를 두고 진지하게 그때 토론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누구를 탓하는 게 아니라 그런 아쉬움이 있다는 말이다."

 

(최재봉은 "이즈음 한국문학은 너무 쏠리고, 위축된 것 같다"고 말한다. 사진=조용호 UPI뉴스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은 "이즈음 한국문학은 너무 쏠리고, 위축된 것 같다"고 말한다. 사진=조용호 UPI뉴스 문학전문기자)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거론됐다. 특별히 더 기억에 남은 문인은?

"회사 동료이기도 했지만 너무 일찍 끝난 김소진이 먼저 생각난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김소진 같은 작가의 역할이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식인과 민중의 접점을 바탕으로 특정한 방향으로 쏠리는 경향을 견제하면서 균형을 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주고 '곁'을 내주었던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도 고마웠다. 박완서 선생님도 좋은 작가이고 동시에 개인적으로 가까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분이다. 김훈 선배 이야기는 이런저런 꼭지에서 여러번 언급했다."

다독가인 정혜윤 CBS 피디가 '이야기는 오래 산다'에 붙인 "문학에 애정이 깊고, 직업인으로서 긴 시간 성실했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라는 발문은 적실하다. 가까이서 오래 지켜본 최재봉의 '성실'은 흉내내기 쉽지 않은 덕목이다. 날카로운 안목과 다독의 바탕까지 겸비한 기록자가 2권으로 압축한 결실이니, 더 알차다. 최재봉은 "더 잘 쓰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잘 지나온 것 같다"면서 "한 인간이 3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붙들고 나름 애쓴 족적과 그 과정에서 얻은 결실로 읽어달라"고 했다. '탐문' 말미에 붙인 그의 보고.

원고를 불에 태우고, 책을 불에 태우고, 심지어는 사람을 불에 태워도 그 안에 담긴 정신까지 태워 없앨 수는 없다는 것. 분서와 소멸에 맞서가며 우리가 책을 쓰고 읽는 까닭은 인간 정신의 불멸성을 믿기 때문이리라.

_'원고는 불에 타지 않는다!'

 

조용호 UPI뉴스 문학전문기자 jhoy@upi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