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기의 유역문예]

(임우기 문학평론가)

과연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민중시에도 ‘원시반본’의 시 또는 무위이화의 시론이 적용될 수 있을까요?

사실 상당한 세월 동안, 소위 민중시의 허실虛實, 진위眞僞의 문제는 깊이 고민한 바 있습니다. 정치사회적으로 결국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거든요. 결국 민중시도 언어의 진위 허실 문제에 있습니다. 김수영 시인도 이 민중시 문제에 대해 고민한 흔적들이 있습니다.

김수영 시인이 깊이 공부한 M. 하이데거의 존재론으로 말하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고 또한 “언어를 언어로서 언어로 데려온다”는 명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언어」에서 “[인간이 언어에 상응하여 응답하는 한에서] 본래적으로 응답한다는 것, 이것은 뒤로 물러서면서 앞질러 다가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어에 [상응하여] 응답함으로써만 말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말한다. 언어의 말함은 [詩로] 말해진 것 속에서 우리를 위해 말한다.”라고 썼습니다.

(김수영 시인. 사진=문학뉴스 DB)

동양의 위대한 시인 김수영의 ‘고매한’ 시 정신은 이러한 하이데거의 ‘언어의 존재론’을 단박에 능가하는 듯이, 시 「폭포」에서 시의 본질, 언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경이로운 상상력을 통해, 아울러 노자老子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실로, 하이데거의 ‘언어의 존재론’을 김수영의 시 정신이 압도하는 차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근본적으로 김수영의 시는 존재론적 언어의식을 넘어서 무위이화의 시 정신을 체득하였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영의 유명한 시 <폭포>에서 말하는 ‘폭포’ 소리는 천지간 만물의 존재 원리인 무위자연이 낳는 언어, 곧 ‘참 언어’의 본질과 근원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존재론적 언어에 관한 치열한 사유를 통해 시인 김수영은 폭포 소리에서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라는 참다운 언어의 명제, 시론의 명제에 도달합니다.

그 시론은 존재론적 명제를 포함하면서, 바로 무위이화無爲而化가 낳는 저마다 고유의 시를 추구하는 평등하고 민중적인 시론의 경지를 지향하게 되며 널리 확장됩니다.

존재론적으로 보면, 가령, 시인이 자신의 사회역사적 존재가 요구하는 당위로서 ‘남북통일’이라는 ‘말 건넴’에 대해 “언어 스스로가 언어로서 언어를 불러 응답하는” 시 쓰기가 위대한 시인 신동엽, 김남주, 그리고 송경동 시인의 시편들이고, 아울러, 폭포 소리와 같이 스스로 말하고 저절로 ‘곧은 소리’가 되는 ‘무위이화의 언어’는 존재론적 언어와 깊이 어울리고 서로 소통합니다.

민족의 대시인 신동엽, 민중 시인 김남주의 시와 송경동의 시들이 저마다 각각 이념과 서사, 의지와 서정이 한 몸을 이루는 것도 결국 삶의 치열한 수행을 통한 작위나 꾸밈이 없는 자기만의 언어와 고유의 상상력, 곧 ‘무위이화의 시’ 쓰기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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