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응의 문학 & 퍼스널브랜딩 37]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민음사, 2020년 2월)

이 책에 기록한 모험담은 대부분 실제로 일어난 것들이다. 한두 가지는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이요, 나머지는 내 학교 친구들이 겪은 경험이다. 허클베리 핀은 실존 인물에서 취해 왔다. 톰 소여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톰은 한 개인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세 친구의 특징을 결합하여 만든 인물이다. 말하자면 조립식 건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상야릇한 미신들은 하나같이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기, 즉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이나 사십 년 전 서부의 어린이들과 노예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것들이다.

나는 주로 소년 소녀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이 책을 썼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어른들한테서 외면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때 자신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이야기했는지, 그리고 때때로 어떤 이상한 짓에 몰두했는지 어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회상하도록 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1876년, 하트퍼드에서 저자.

----<톰 소여의 모험> 중에서

  1. 초등학교 코흘리개 친구 몇 명과 낮술을 했다.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기분은 이 세상을 다준다 해도 바꿀 수가 없는 그런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왜 그럴까? 물론 막걸리와 파전도 맛이 있지만 아마도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인생의 맛 때문이리라.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단이 났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톰 소여의 모험·The Adventures of Tom Sawyer>에 관한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왈칵 속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막 헤어진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우정도 그랬고, 책과 영화, 드라마와 만화로 접했던 바로 그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에 등장하는 톰과 허클베리 핀과 베키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1. 마크 트웨인이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가라는 주장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어 보인다. 그를 부르는 데에 있어서 ‘미국’이라는 국가명이 앞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미국문학의 아버지’, ‘미국의 셰익스피어’, ‘미국문학의 링컨’ 등등. 왜 그는 그렇게 한 나라의 시그니처Signature) 작가로 불리고 있는 것일까?

마크 트웨인은 그가 남긴 작품도 훌륭하지만 특히 유머가 철철 넘치면서도 촌철살인의 허를 찌르는 아포리즘(aphorism)도 유명하다. 그의 유명세에 큰 역할을 했다.

“20년 후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더 실망할 것이다.”

“장의사가 슬퍼하도록 잘 살아라.”

그의 말은 가히 주옥같은 ‘퍼스널브랜딩 어록’이라고 칭해도 오히려 부족한 듯하다.

  1. <톰 소여의 모험>은 성인기에 비해서 모든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소년기에 대한 찬가다. 이 책은 오래전의 광고 문구이자 필자의 아버지가 가훈처럼 이야기했던 말을 생각나게 한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이 책은 장르 구분을 하자면 동화로 구분되지만 마치 성장소설이나 철학서의 울림과 비슷하다. <어린 왕자> 같은 그런 것이다.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들도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톰과 헉은 어릴 적 내 친구로 지금은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나간 세월과 꿈결 같은 추억을 더듬을 수 있기에 정지용의 시(詩) <향수>와 같이 감성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특히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다. 흑인들을 하인이나 검둥이라고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흉악무도한 악당 역할에는 인디언 출신의 혼혈아가 맡는데 그는 이렇게 협박한다. “내 몸속에 인디언 피가 공연히 흐르고 있는 게 아니라고…….” 또한 여성을 하찮게 여기는 남성 우월주의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계집애들은 어차피 약속을 지키지 않거든.”

  1. 주인공 톰 소여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폴리 이모의 보살핌 속에 지내는 소년이다. 그런데 그는 역대급 장난꾸러기다.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고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행동한다. 달리 말하면 문제아이고 불량 청소년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런 그가 황당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데, 대표적인 몇 개를 소개하며 줄거리에 대신한다.

어느 날 그는 친구 허클베린 핀과 함께 사마귀 제거라는 미신을 실행하기 위해서 공동묘지를 찾는다. 그리고 거기서 우연히 젊은 의사 로빈슨 살인 사건을 목격한다. 그런데 진범 인전 조의 간계로 머프 포터 영감이 엉뚱한 살인자로 몰려 교수형에 처할 운명에 이른다. 그는 양심의 가책과 복수에의 두려움에 갈등하지만 용기를 내서 법정 진술을 한다.

톰은 또한 해적 놀이라는 핑계를 구실삼아 허클베리 핀과 조 하퍼 이 두 명의 친구와 함께 무인도로 가출을 한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이는 세 소년의 실종사건이 되어 온 마을을 뒤집어놓고 급기야 합동 장례식이 치러지게 된다. 물론 그들은 장례식 도중에 홀연히 나타나는 빅 이벤트를 연출한다. 이쯤 되면 도를 넘는,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닌 톰이었던 것이다.

톰은 단체로 동굴로 소풍을 갔다가 동굴 속에서 베키와 길을 잃고 고립된 적이 있다. 사흘 동안 갇혀 지내며 공포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등 온갖 고생을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돌아온다. 동굴 속에서 살인범 인전 조와 그가 숨겨 놓은 보물의 존재를 안다.

톰과 허클베리 핀은 인전 조 등 범인이 문제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미행하다가 그들이 더글러스 부인을 해치려는 계획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마을 사람에게 알려서 더글러스 부인을 위기에서 구출한다. 또한 톰이 동글 속에 숨겨져 있던 보물을 발견하여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다. 그들은 돈과 명성을 얻으며 해피엔딩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1. 주인공 톰 소여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중의 하나라고 한다. 슈퍼히어로의 원조이고 아메리칸 드림의 시작이다. 가장 미국적이라는 것이 그렇게 불리는 이유다. 주인공 톰과 헉은 모험과 돈, 명예, 사랑, 정의 등 미국적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을 얻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1876년 출간 이래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을 정도라니 미국인들의 톰에 대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겠다.

톰이라는 캐릭터는 오늘날 우리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짓궂은 장난꾸러기가 벌이는 좌충우돌 모험 속에서 반짝이는 지혜와 전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톰이라는 소년기의 인간 브랜드가 지니고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매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퍼스널 브랜딩 관점으로 세 가지를 콕 집어서 정리해 본다.

하나, 가치 창출의 꾀.

“좋아하냐고? 글쎄, 내가 이 일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아이들한테 담장에 회칠할 기회가 어디 날마다 있는 줄 아니?”

톰은 이모로부터 벌칙 하나를 부여받는다. 높이 3미터에 길이 30미터의 담장에 회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친구들이 놀려댄다. 토요일 아침에 수영을 하러가는데 너는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신세라며 말이다. 거기에 대한 톰의 대응이다.

회칠하는 것이 지루한 일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놀이라고 하니 친구들이 서로 해보겠다고 한다. 그런데 기회를 쉽게 주지 않는다. 심지어 무엇을 받고서 일을 하게끔 한다. 재산을 벌면서도 이모의 벌칙도 완벽하게 마무리한 것이다. 톰의 이러한 가치 창출 능력은 오늘날 마케팅이나 브랜딩에서도 매우 중요한 전략 중의 하나다. 톰은 일찍이 손에 넣기 어렵게 만드는 전략, 즉 고가 전략 또는 신비주의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둘, 약속의 무게감.

“하지 않겠다고 함부로 선언하지 마라.”

톰은 새로 생긴 ‘금주 소년단’의 화려한 허리띠가 마음에 들어 그 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한다. 그리고 어떤 서약을 한다. 회원으로 남아 있는 한 담배도 멀리하고 욕설도 삼가겠다고 말이다. 물론 새로운 사실도 발견한다. 어떤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는 것은 곧 그 일을 하고 싶어 못 견디도록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사실 말이다. 톰이 화려한 허리띠를 화려하게 과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얄궂게도 기회는 그를 비켜갔다. 그날 그는 소년단에서 탈퇴했던 것이다.

사실, 인간 누구나 이런 본능과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함부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 공약(空約)이 되고 불신으로 연결된다. 선과 악, 현명함과 어리석음의 차이는 바로 이러한 약속의 차이에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반복하고 있기에 더욱더 뾰족하게 다가온다.

셋, 용기 있는 행동.

“제가 찢었습니다.”

톰이 짝사랑하는 여학생 베키가 곤경에 처해졌다. 선생님의 책을 몰래 훔쳐보다가 한 장을 찢어버린 것이다. 선생님이 범인을 찾겠다고 반 전체 학생을 모아놓고 심문을 한다. 물론 톰은 베키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톰은 자신이 책을 찢은 범인이라고 바보처럼 용기를 낸 것이다. 톰은 엄청난 양의 매와 각종 벌을 받아야 했다. 대신에 베키의 신뢰와 사랑을 얻었고 스스로 어깨를 으쓱할 정도의 자부심을 얻었다. 모험 없이는 값진 그 무엇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톰의 행위가 과연 용맹스러운 것이냐 아니냐를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이렇듯이 논리를 뛰어 넘는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뿐이다. 톰의 이러한 아름다운 거짓말, 약자를 위한 거짓말은 오늘날에 더욱 요긴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통찰력이기 때문이다.

  1. 미국 정신의 실체를 알고 싶다면 마크 트웨인을 읽어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이른바 모험 쌍둥이 소설인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어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핵심 메시지는 “꿈꿔라, 탐험하라, 발견하라!”이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에 여전히 최고의 필요가치는 모험이다. 오히려 그 모험의 장소나 대상이 온라인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으로 넓어졌기에 더욱더 모험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혁신의 대명사인 스티브잡스가 그것을 증명했다.

꿈을 꾸고 탐험하고 발견하는 데에는 남녀노소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실천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사람은 톰 소여를 만나야 한다. 그는 지금도 미시시피 강가에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면서 해적놀이, 산적놀이에 빠져있으면서 돈과 사랑과 명예를 함께 쥐는 아메리칸 드림을 만끽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정응

디지털 종합광고대행사 더베이컨(The Bacon Inc.)의 브랜딩 전략 고문이며,저술가 및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이다.광고대행사 한컴(전 삼희기획)과 HS애드(전 LG애드)에서 일했다. 『당신은 특별합니다』, 『북두칠성 브랜딩』, 『편지, 쓰고 볼 일입니다』, 『이젠 휘둘리지 마!』, 『이태원 러브레터』 등 5권의 저서가 있다. 1324tig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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