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진행

(창작 뮤지컬 <우리 벗아> 주인공 김대건 역을 맡은 이하연 배우. 사진=서울가톨릭연극협회 제공)

[문학뉴스=이석번 기자] 무대 막이 오르면 세 아이가 호롱불을 들고 길을 떠난다. 음악은 긴박하게 바뀌고 포도대장과 포졸들이 죄인들을 잡으러 무대로 뛰어들고 사람들을 에워싼다. 흑암 같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처럼 세 아이가 부르는 ‘이 어둠, 당신 선택이라면’이 낭랑하게 무대에 울려 퍼진다. '절망'과 '희망'을 사이사이에 배치해 극적으로 연출한 뮤지컬 ‘우리 벗아’ 공연이 지난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랐다.

창작 뮤지컬 <우리 벗아>(박경희 극본/김은찬 작곡/민복기 연출)는 코로나 4단계 상황으로 비대면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많은 공연무대가 정상적인 공연을 하지 못하고 객석 띄어 앉기나 비대면 공연 등으로 어쩔 수 없이 파행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불확실한 상황일 경우 공연을 취소하거나 축소, 강행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판단하지만 대부분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뮤지컬 <우리 벗아>도 아쉽다고 하겠다.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무대예술도 팬데믹을 피해 갈 수 없는 장르다. 연극의 3요소로 배우, 극본, 관객을 말한다.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무대예술은 장르의 특성상 다른 점도 있지만 현장에 있는 관객을 중시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코로나는 근본적으로 대면을 기본으로 하는 무대예술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군문 효수로 쓰러진 김대건 신부에게 마카오로 유학 떠났던 어린 김대건과 최양업, 최방제가 다가와 그의 영혼을 인도한다. 사진=서울가톨릭연극협회 제공)

뮤지컬 <우리 벗아>는 종교극 성향을 띠고 있는 공연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할 만하다. 구성에서 과거 역사적 사실과 현실을 중의적으로 표현해 관객들에게 생각의 폭을 넓혀 준다. 뮤지컬 제목으로도 쓰인 <우리 벗아>는 김대건 신부가 마지막 편지에서 조선의 신자를 칭한 단어다. 박경희 작가의 대본을 본 민복기 연출이 뮤지컬의 제목으로 하자는 의견이 냈다고 한다. <우리 벗아>는 과거나 현실이나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동질성을 지닌 의미로 표현한다.

이런 절망적 상황은 극중 폭풍 속에서 파선하는 배는 과거와 현실이 공존하는 장면으로 연출한다. 배 안에는 과거의 인물인 김대건 신부와 그를 따르는 이들, 현재의 손대표를 비롯한 프로덕션 식구들, 선배로 배우들을 이끄는 김안당, 이들이 함께하는 위태로운 배 안은 현실이자 과거다. 뮤지컬 넘버 ‘버리시오!’는 이런 극적인 상황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김은찬의 음악은 다양한 음악 스타일로 때로는 무겁고 때론 가볍게, 속도감 있으면서 느슨하지 않게 극의 중심을 잘 끌어간다. 구윤영의 조명과 윤호섭의 영상은 효과적인 무대를 만들어 단순한 무대에서 다양한 무대를 형상화시켰다. 대형 천(샤막)을 통한 영상 효과는 현장에서는 효과적으로 무대 효과를 연출했다. 비대면으로 영상화된 공연을 보는 관객은 이런 무대 효과를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될지는 큰 숙제로 남을 듯하다.

(어전회의 장면. 죽이자는 영의정 권돈인과 살려서 인재로 활용하자는 예조판서 조병현 등이 격론을 펼친다. 사진=서울가통릭연극협회 제공)

국립극단을 비롯해 국공립 단체는 작년을 기점으로 비대면 공연인 경우 별도 예산을 들여 영상화 작업을 위한 예산을 책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대형 뮤지컬을 제외한 일반 공연의 경우는 따로 예산을 들여 촬영할 형편이 안 되어 현장에서 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품질의 공연을 영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다 하겠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경우는 고품질로 영상화해 상영하기도 했다.)

한국의 대중음악과 영화, 드라마의 수준은 이미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무대예술 중 뮤지컬도 세계 수준에 근접했다. K-뮤지컬로 세계의 문을 두드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번 뮤지컬<우리 벗아>는 완성도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물론 해외에서 평가를 받기위해서는 대사 위주 극 진행보다는 음악 위주로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1주일 정도의 짧은 공연 일정과 관객의 평가를 받기도 전에 비대면 공연으로 무대를 마치게 된 것은 너무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이번 공연에는 지자체(서울시)의 후원과 서울가톨릭연극협회(최주봉 회장)와 서울대교구(염수정 추기경)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sblee@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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