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한 문장]

왜냐하면 내 가치관 가운데 ‘좋고 나쁨과는 별개로 사실을 하나씩 확인해 나가는 게 사람 아닐까’라는 게 있어서, 예를 들어 세상에는 ‘첩’이라는 입장에 선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매력이 사라지는 건 남의 남편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태연하게 떠벌리는 시시함을 보일 때거든. 마음의 빚을 짊어지고 있는 편이 훨씬 매력적인데 말이지, 나한테는 부인과 애인 둘 중 어느 한쪽이 좋거나 나쁘다는 게 없어서, 부인에 대해서는 ‘당신, 남편이 애인을 만들 정도의 아내였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라는 생각이 분명히 있어. 하지만 애인이라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우연히 가정이 있었던 거예요”라고 큰소리로 말하면 ‘아, 시시한 인생이네’ 싶거든. (37쪽)

<키키 키린의 말>

마음을 주고받은 명배우와 명감독의 인터뷰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21

<키키 키린의 말>은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감독이 여배우 키키 키린과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것으로 키린이 사망한 뒤 출간됐다.

키키 키린(樹木希林, 1943~2018)은 일본의 여배우다. 1977년부터 예명으로 사용한 키키 키린은 나무와 나무가 모여 보기 드문 숲을 이뤘음을 뜻한다. 본명은 우치다 게이코(内田 啓子)다. 1961년 극단 분가쿠자의 연극연구소 1기에 합격하면서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영화 <도쿄 타워>의 주인공 어머니를 시작으로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일본 국내외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했고, 제10회 아시안필름어워즈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2008년 <걸어도 걸어도>를 시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여섯 편을 함께 만들어 ‘고레에다의 페르소나’로 알려졌다. 2013년 전신으로 암이 전이됐다는 사실을 고백한 뒤에도 연기 활동을 계속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 裕和, 1962~ )는 일본의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2018년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2009년에는 배두나가 주연한 <공기인형>을 공개해 주목을 끌었다. 다양한 사회문제를 감독 특유의 시선으로 감정을 절제하며 잔잔하게 전개하는 작품을 많이 만들고 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무도 모른다> 등이 있다.

남미리 기자 nib503@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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