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희 시인의 네번째 시집 <눈물은...>)

[문학뉴스= 백성원 기자] 지난 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풍경을 날것 그대로의 상상력과 충만한 시적 에너지로 포착해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은 황성희 시인의 네번째 시집<눈물은 그러다가 흐른다>(문학동네 펴냄, 1만원)가 나왔다. 문학동네 시인선 153권.

이번 시집은 앞선 시집들에서 뚜렷이 드러났던, ‘어머니’라 일컬어진 시세계의 기원이자 근원, 그 막강한 두려움에 집중하는 데서 한 발 나아가 ‘나 자신’을 시세계의 전면에 내세운 게 특징이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한 몸에 포함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 질문과 해답을 모두 품은 존재가 느끼는 모순과 긴장감이 그의 시세계에 새로운 떨림과 울림을 선사한다. 이로 인해 마주한 절대적인 무력감. 나를 뒤흔들고, 억압에 저항하고, ‘어머니의 세계’와 투쟁하며 느끼는 진동이 결국 맞닿는 곳이 ‘무의미’와 ‘죽음’일 때의 무력감이 ‘허공’의 이미지에 투영되면서 뜨겁고 위태롭게 빛나는 시편들이다. 그러다가, 눈물은 흐른다.

시집은 1부 ‘복숭아를 사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속에 지우개부심/ 자물쇠가 천직인 사람들/ 새의 이웃과 나/ 개의 복수/ 평범한 오작동의 세계/ 모든 것을 피해 살아남은 사나이/ 물고기 사내/ 시시한 세계/ 산만한 국민/ 여긴 지금 안전한 시/ 출구 없음의 마술/ 환영의 사회/ 시간의 능력 등을 담았다.

또 2부 ‘그러니까 옳은가’에는 잡동사니의 역사/ 성장의 동력과 잡동사니 기질/ 라면에 관한 오해/ 생선구이/ 새우깡 소년/ 불투명 호갱님의 멘토스 시전/ 소비자의 변심-넌 어떻게 어머니가 싫어?/ 에피소드 대전(大戰)/ 육질의 비밀-발바닥은 서정을 좋아해/ 태양의 입장과 막무가내식 소년/ 의리의 지우개/ 붕歌붕歌/ 의심하는 주특기와 3부 ‘이런 게 바로 집으로 가는 느낌’의 편식의 속사정/ 어젯밤 귤/ 천재 스킬/ 끝이 처음을 장식하는 방법/ 실종의 기교/ 드라이브 멜랑꼴레리/ 눈부신 사생아/ 무식한 비닐봉지/ 해석의 오류/ 불사과한 꿈/ 포도의 신기술/ 콧물의 세계를 실었다.

4부와 5부에는 ‘안녕이라고 할 때는 다들 입 같은 걸 사용하지 않던가요’와 ‘어떤 휴지가 콧물을 의심하겠는가’에서 각각 발가락 마술/ 둔갑술 사연/ 구름이 새겨진 벽지/ 이상하지 않은 아침/ 플라스틱 재능/ 손의 심정/ 입을 사용하는 노래/ 없는 목격자/ 얼굴의 목적/ 진짜 냉장고/ 트럭 신봉자/ 거울 깨는 어린이/ 허공의 맛(4부)과 나는 힘이 세다/ 콧물에 대한 신념/ 눈물의 방향/ 노인의 탄생/ 아버지와 코렐/ 자화상/ 집 걱정 신데렐라/ 붉은 사과의 습관/ 다들 여기 왜/ 가위바위보/ 오늘 하루만 더 나무/ 어떤 소원/ 지독한 끝/ 아직은 터널/ 옛날 사람/ 단념(5부)의 시편들이 모였다.

끝이 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한 번도 본 적 없는 제품과 맞닥뜨리는 심정 같을 것아무런 설명서 없이 내가 나를 건네받는 심정 같을 것얼마 전에는 난데없는 참담함과 속절없음으로기계의 일부가 마비되기도 했다(…)이상하지 않은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입속에 밥을 넣고 씹다가 삼키는 것도 그렇고넘어져 생긴 상처에서 피가 나는 것도 그렇고자고 일어나면 선뜻 아침이 와 있는 것도 그렇고이대로 오줌 누다 끝나더라도 그러려니 할 것 같다 _'이상하지 않은 아침' 부분

아침 준비를 할 때, 손이 차가운 것은, 찬물 때문인가, 손 때문인가, 설마 거짓일 리 없는 나 때문인가, 콩나물 같은 것, 감자볶음 같은 것, 속아도 속아도 계속 믿고 싶은, 지금 내 눈앞의 이 순간 같은 것, 지금 이 순간의 내 얼굴 같은 것. _'없는 목격자' 부분

이 얼굴 하나를사실로 만들기 위해살아온 수십 년혹시 들켰을까나는 나에게단 한 번의 사건이라는 걸갑자기 발을 멈춘다 _'콧물에 대한 신념' 부분

조금만 더 말을 모으면나를 설명하는 일이 가능할 거라고정확한 말을 찾아, 대상 그 자체인 말을 찾아때가 되면 진리를 치장해볼 것이라고 들떴다몇 권의 말 무덤만 덩그렇게 남길 줄도 모르고내용도 아름다움도 없는 카드에다수신인도 발신인도 없는 카드에다....

황선희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가차 없는 나의 촉법소녀>를 기점으로 그 이전에 쓴 시들을 이제 묶는다”며 두려움의 내용도 모르면서 지겹도록 오래 도망쳤지만 내 얼굴이 낯설지 않은 시간을 한 번은 살아보고 싶었기에 남아 있는 생의 모든 용기를 걸고 이 불안한 속도와 맞서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시인들에게 의지하여 여기까지 왔다.여기 문장들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그것으로 과분하며 다시없는 영광이겠다“며 ”당신들로 인해 나는 비로소 가치로워졌고 어느 거리에서 뿌리 없이 떠돌더라도 당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을 것이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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