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의 종횡무진]

(김미옥 활자중독자)

- 새로운 디아스포라 문학 하나

비가 많이 온다.

책을 읽고 일어나 베란다 창을 활짝 열어

몰아치는 비바람을 보고 있다.

생각하면 나를 일으킨 건 희망이 아니라 분노였다,

살아온 것이 아니라 견딘 것이었다.

아이의 태동을 처음 느꼈을 때 나는 괴로웠다.

남들은 태교를 아름다운 동화와 부모의 즐거운 목소리로 시작했지만

나는 퇴근길에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내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니 너는 네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슬픔은 짧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라는 싸움에서 진다.

베트남 출신 킴 투이(Kim Thúy)의 소설 <루(ru)>다. 루(ru)는 프랑스어로 ‘실개천’, 베트남어로는 ‘자장가’ ‘자장가를 불러 재우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비유적인 의미로 ‘(눈물, 피, 돈)의 흐름’을 뜻한다. 이 소설은 베트남 보트피플로 캐나다 퀘벡에 정착한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다.

소설가 킴 투이는 1968년생이고 지금의 호치민시인 사이공에서 태어났다. 월남이 패망하자 10세 때 가족과 함께 보트피플로 난민캠프에서 지내다 캐나다에 정착했다. 캐나다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베트남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고 지금은 작가가 되었다.

대부분의 디아스포라 문학이 소외감과 정체성 혼란으로 실존의 슬픔이 느껴지는 것과 달리 이 소설은 詩처럼 아름다워 마음이 평온하다.

(킴 투이 작가, 사진=뉴아카데미 홈페이지)

무엇 때문일까 생각하다가 나는 작가와 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나와 그녀에게는 분리불안이 없었다. 베트남과 캐나다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가난한 어린 시절과 어른이 된 나를 끌어안듯 그녀 또한 베트남과 캐나다를 안고 있었다.

폭탄이 터져 산산조각 사체가 된 여인을 흩어진 노란 호박꽃과 함께 기억했고 중노동으로 허리가 굽은 노파가 재래식 변소에 빠져 죽었을 때도 분뇨가 흘러가는 연못의 연꽃으로 기억했다.

베트남에서 그의 집을 점령한 소년소녀 감시관들의 추억도 음악으로 기억한다. 작가의 아버지가 음악을 들려주자 그 소년소녀 감시관은 ‘타락’해 버린다. 슬프고 아름다운 곡조에 눈물을 흘리며 부르주아 감성에 젖어든다.

가까스로 탈출해서 입소한 난민캠프에는 식사로 통조림이 주어진다. 천장은 비가 새는데 깡통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저마다 경쾌한 소리를 낸다. 25개의 통조림 깡통은 교향곡이 된다. 이 소설이 아름다운 이유 중의 하나는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퀘벡은 프랑스어가 공용어다. 그녀는 말하지도 들리지도 않던 그 시절에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긍정적이게 했을까. 심지어 백인과 결혼한 작가의 아들은 자폐증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들려준 베트남의 속담이다. ‘인생이라는 싸움에서 슬퍼하면 진다.’ 그것은 살면서 내가 내게 그리고 내 아들에게 했던 말이었다.

(킴 투이, <루>, 문학과지성사, 2019)

이 소설은 詩로 읽히는 특이한 형식을 갖고 있다. 각 장의 글은 짧으나 마지막 문단이 다음 장의 시작 글이다. 이 책은 ‘동포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된다. 그녀의 동포는 베트남과 캐나다 양쪽을 의미한다.

디아스포라 문학의 새로운 얼굴이다. 그렇다고 감성적인 글이 전부가 아니다. 작가가 어릴 때 보았던 베트남 여인들에 대한 묘사다. 그 문장은 한국의 내 어머니들에 대한 묘사이기도 했다.

‘남편들과 아들들이 등에 무기를 지고 다니는 동안 여인들이 베트남을 짊어지고 있었다. 남자들이 정글에서 나와 논두렁을 걸어 다니기 시작한 뒤에도 여자들의 등에는 여전히 소리 나지 않는 베트남의 역사가 얹혀 있었다.‘

이 소설은 이념에 대한 공격이 없다. 베트남의 친인척들이 미국과 공산주의의 편으로 나뉘는 기억마저 아득하다. 이 독특한 디아스포라 문학은 베트남과 캐나다 퀘벡을 다 모국으로 감싸 안았다.

<루(ru)>는 캐나다 ‘총독문학상’과 프랑스 ‘에르테엘-리르 대상’ 수상작이다. 2018년에는 성추문으로 취소된 노벨문학상을 대신하는 <대안 노벨문학상> 최종 후보였다.

종전 30년이 지난 뒤 미국이 베트남 내 미국의 혼혈아들을 본국으로 데리고 올 때 작가 킴 투이는 그들이 정착하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나는 라이 따이한을 떠올린다.

라이는 ‘잡종’이란 뜻이다. 한국 병사와 베트남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그들은 ‘잡종’으로 분류되었다. 대한민국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작가의 킴이란 이름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떠올렸다. 원작이 푸치니의 <나비부인>이니 장소가 일본에서 베트남으로 옮겨 간 것일 뿐. 나는 동양여자를 순애보로 그리는 서구우월주의 사고에 맹비난을 퍼부었었다. 그래도 킴 역을 맡았던 Lea Salonga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미스 사이공>의 여주 이름이 '킴'이고 그녀를 좋아하는 월맹군 장교 이름이 '투이'다. 신기한 게 오늘의 소설 작가 이름이 '킴 투이'다.

베트남에 자기 자식들을 버리고 온 한국 남자와 방기했던 국가의 국민인 나는 서구의 인종편견을 욕하다 말고 입을 다문다. 만약 작가 킴 투이가 타고 온 배가 한국에 닿았다는 가정을 하면 두 눈이 어두워진다.

우리의 의식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