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 모티브...올해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

장두이·김정민·임향화 출연...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문학뉴스=이성봉기자] 올해 제41회 서울연극제의 문을 여는 공연은 추모 2주기를 맞이하는 작가 최인훈이 생전에 남긴 희곡을 무대에 올린 <달아 달아 밝은 달아>(극단 공연제작센터 제작, 윤광진 연출)이다. 5일부터 10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한국 현대소설의 고전 <광장>(1960)의 작가 최인훈은 소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심혈을 기울인 6편의 희곡을 남겼다. 작가 자신은 타계하기 전 “소설가보다 극작가로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을 말할 만큼 자신의 극에 애착을 가졌다. 40여 년 전 암울한 국내 상황에서 올려진 이 작품들은 창작극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국내 연극계에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장두이가 심봉사, 김정민이 심청으로 분해 인간의 보편적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공연제작센터 제공)

<달아 달아 밝은 달아>는 우리 여인의 상징인 ‘심청’을 모티프로 새롭게 창작된 극이다. 극에서는 심청의 ‘효’나 ‘인과응보’에 대한 용궁의 보상은 사라지고 차가운 현실이 들어선다. 심청에게 어떤 자비도 구원도 주어지지 않고 잔혹한 폭력과 착취가 가해진다. 우리에게 돌아온 늙은 심청은 창녀로 평생을 살아온, 눈이 멀고 정신이 혼미해진 심청이다.

이 극은 차별과 수탈의 일제통치에서 성장해 참혹한 한국전쟁을 거쳐 이어진 수십 년 혼돈의 세월을 살아 온 한 지식인 작가의 외침처럼 들려온다. 늙고 눈 먼 심청은 거리를 헤맨다. 놀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꾸며낸 ‘도화동 동화’를 들려준다. 전후 최고의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의 시적인 지문, 간결한 대사, 빈 공간에서 태어난 잔혹 설화로 재탄생된다.

(최인훈의 극본은 용궁이나 미화된 허상이 아닌 참혹한 현실을 그린다. 사진=공연제작센터 제공)

<달아 달아 밝은 달아>는 심봉사(장두이)의 꿈에서 시작된다. 저승사자가 그를 데리러 찾아오는 첫 장면에서 늙은 심청의 환상이 펼쳐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작품은 꿈같이 흘러간다. 우리가 아는 심청은 깊은 바다 속 심연으로 떨어져 아름다운 용궁에 이른다. 그러나 최인훈의 심청(김정민)이 도달한 곳은 ‘용궁’이라는 매춘업소이다. 심청의 수난은 계속된다. 업소에서 빠져 나와 납치되고 강간과 수탈을 당하고 참혹한 전쟁터 피난민 속에 남겨진다. 몇 십 년이 흐른다. 눈멀고 망상에 사로잡힌 늙은 심청(임향화)이 무대에 등장해 자신의 거짓 동화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극단 ‘공연제작센터’(대표 윤광진)는 2020년 극작가 최인훈의 작품을 모아 ‘최인훈연극시리즈’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지난 1월 공연한 <옛날옛적 훠어이훠이>(서강대 메리홀, 1.30-2.2)를 이은 2번째 작품이다. 원작에서 작가는 표현주의 연극기법을 생각하며 빈 무대와 상징적 소품, 인형과 색채를 구상하고 있지만, 연출(윤광진)은 원작보다도 더 간결하고 상징적인 무대를 통해 주인공들이 현실과 환상의 공간을 경계없이 넘나들게 하려고 한다.

(장두이, 김정민, 임향화 등 연기파 배우들이 열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공연제작센터 제공)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OBEI상을 받은 배우 장두이가 심봉사를 맡았고, 심청에는 2015 제52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김정민, 늙은 심청에는 올해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에서 노파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임향화가 출연한다. 입장권 3만~5만 원, 예약문의 010-2368-1739

sblee@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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