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뉴스 = 윤하원기자] 국내 최고의 ‘백석(1912~1996) 전문가’로 꼽히는 이동순 영남대 교수(67 · 사진)가 월북 시인 백석과 기생 진향, 법정 스님이 등장하는 길상사 관련 기사들에 대해 “사실에서 벗어나 있으며, 조작되고 윤색됐다”고 지적했다.

(이동순 영남대 교수, 사진 제공)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 교수는 최근 인터넷 매체 ‘논객닷컴’에 기고한 ’시인과 기생의 사랑, 그 소설적 재구(再構)’라는 제목의 칼럼과 관련해 문학뉴스와의 통화에서 “한 시인의 고결함과 신산(辛酸)했던 생애, 한 기생의 곡절 많은 삶과 엄청난 부동산 헌납, 그리고 한 승려와의 상관성은 전혀 형성되지 않는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여러 신문이나 여성잡지 등 저널리즘에서 다루어지는 한 기생의 부동산 헌납 관련 기사에는 백석 시인과의 사랑이 마치 하나의 장식품처럼 반드시 따라다니는데, 만약 시인이 살아서 이 경과를 지켜보았다면 얼마나 착잡하고 만감이 교차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이어 “시인과 기생, 승려 셋을 반드시 함께 엮으려는 세간의 시도는 비속(卑俗)하기 짝이 없다”며 “만약 백석 시인이 생존 시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거기서 내 이름을 당장 빼라고 대성일갈(大聲一喝) 했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백 석 시인, 사진=구글)

이 교수가 칼럼에서는 "'백석'이라는 월북시인의 이름 자체가 금기어처럼 받아들여지던 지난 1987년 국내 최초로 ‘백석 시전집’(창작과비평 刊)을 펴낸 이동순 교수는 이 시집을 발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날 백석의 연인이었던 김영한 할머니(1916~1999, 기생 시절 ‘진향’이라는 이름을 썼고, 백석으로부터는 ‘자야’(子夜)라는 아호(雅號)를 받아 썼으며, 대원각 시주 이후 ‘길상화'라는 보살명을 받았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사진=알라딘)

이후 김 할머니와 10여 년간 각별히 지내면서 백석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들었는데, 김 할머니가 자신의 소유였던 ‘대원각’의 부지와 건물을 헌납한 과정은 그간 인터넷이나 잡지 등에 소개된 내용과 크게 다르다고 이 교수는 밝혔다.

"내가 자야 여사에게 들었던 비화(祕話)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사찰이 위치한 그곳은 원래 왕조말기 어느 친일부호이자 고위직을 지낸 관리의 별장이었다고 한다. 나라가 일제에게 패망하자 친일인사는 그곳을 조선총독부에 헌납했다. 8·15후 미군정청 관할로 넘어갔던 그곳은 자유당정부가 이를 인수하게 되었을 때 정부의 상당한 책임자였던 모씨가 자신 명의로 배돌렸다가 첩실(妾室) 진향에게 이별의 정표로 넘겨줬다. 격동기의 국유재산 관리는 이렇게도 어설펐다.

이후 6·25전쟁이 일어나자 진향은 부산으로 피난길을 떠났다. 난세의 격동 속에서도 성북동의 이 부동산을 소중하게 지니고 있다가 마침내 1970년대부터 요정을 열었고, 명칭을 대원각(大苑閣)이라 하였다. 하지만 워낙 큰 규모라 유지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요정경영도 항시 부실하였다. 그리하여 진향은 혼자서 감당하기 벅찬 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생각을 가졌다. 대학에 기증하려다가 여러 이유로 사정이 여의치 않자 이곳을 종교기관으로 탈바꿈할 계획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인물이 불교계의 승려 법정(法頂, 본명 박재철, 1932~2010)이었다.

승려와 여러 차례에 걸쳐 대면을 가졌지만 진향은 선뜻 기증의 확신을 갖지 못하였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번복을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헌납으로 가닥이 기울게 되었고, 이 소식은 다음날 조간신문에 즉각 대서특필되었다."

(젊은 시절의 백석과 진향, 사진=tbs 화면 캡쳐)

이 교수는 그날 이후로 자야, 즉 기생 진향을 일부러 찾지 않았다고 밝혔다. “진향은 시인 백석과의 사랑을 몽매간에도 잊지 못하며 살아왔다고 입버릇처럼 술회해왔지만, 그녀가 정작 시인을 위해 마음을 쓴 정성이란 백석문학 기금 정도에 불과했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년의 김영한 할머니, 사진=이동순 교수 제공)

그동안 인터넷과 잡지 등에는 진향이 북으로 간 백석이 돌아올 때에 대비해 성북동의 배밭골을 사들여 요정을 운영했다느니, 그녀가 10년 동안이나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 시주 의사를 밝혔음에도, 평소 '무소유'를 외쳐온 법정스님이 이를 거절했다는 이야기 등이 확인되지 않은 채 나돌아왔다.

이와 관련, 이동순 교수는 문학뉴스와 통화에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길상사 관련 기사들을 읽어보면 거의 사실에서 벗어난 조작되고 왜곡된 부박한 내용들로 윤색되어 있다”며 “세상에 알려진 표면적 사실은 결코 진실이 아닌 경우가 허다히 존재한다는 냉엄한 진실을 소스라치게 깨닫게 된다”고 결론적인 지적을 덧붙였다.

hwyoon@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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