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기의 유역문예]

(임우기 문학평론가)

유역문예론으로 본 김수영의 시 ⓵

김수영의 시는 한국 현대시의 가장 극적이고 최전위에 서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학계나 시단에서 김수영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김수영의 시도 유역문예론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여러 일에 쫓겨 ‘김수영론’을 본격 비평문으로 쓰기에는 어렵고 뒤숭숭한 시절이 이어졌고, 시 한 두 편을 대상으로 삼아 간간히 비평적 관심을 표명했을 뿐입니다. 김수영의 시 중에서, 유명한 <풀><폭포><공자의 생활난> 등을 비평했어요.

김수영 시인은 행복한 경우입니다. 4. 19 세대 비평가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비평가들 연구자들이 지금도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선 김수영의 데뷔작 <묘정의 노래>와 유고시 <풀>을 귀신론 또는 음양의 조화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M. 하이데거의 존재론이나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시 창작론’을 펼친 특유의 참여시 정신, 사회의식 등등을 살펴서 논의해야 겠지요.

시인 김수영의 유명한 유고시 <풀>도 새로운 비평적 사유 방식과 해석을 추가해야 합니다. <풀>이 지닌 특유의 시 형식으로 반복법은 단순히 강조법이 아니라 주술성을 가지고 있어요.

풍백 유사 운사와 함께 지상의 생명계를 주관하는, 곧 천지간의 조화(造化)를 관찰하고 주재하는 인신(人神)의 존재가 투영되어 있습니다. 시에 나오는 ‘풀밭 위에 서 있는 발목’의 주인공을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유전된 무(巫)의 원형이 투사된 존재로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역문예론의 관점에서 보면 <풀>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위한 유력한 형식성이 주술의 반복법입니다.

주문의 언어의식이 은폐되어 있는 것이고 주문의 언어의식이 은폐되어 있다는 것은 시의 화자인 페르소나 이면에 ‘은폐된 내레이터(존재)’가 있다는 것이며, 그 은폐된 내레이터는 페르소나와는 천지간 음양의 조화를 관찰하는 무적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수영 시인 1921-1968. 사진=문학뉴스 DB)

4.19 세대 비평가들 이래 모두가 김수영의 유고시 <풀>에서, ‘풀밭에’ 서 있는 “발목에서/ 발끝에서”의 누군가를 서구적 의미의 ‘자유의지’를 가진 자유주의자 또는 ‘주체적 의식인ㆍ자유인’으로 해석했습니다만, 유역문예론의 귀신론에서 보면, 주문을 떠올리는 반복 형식도 그렇거니와, 풀의 탄생부터 보이지 않는 풀뿌리가 눕기까지의 음양의 순환과 무위이화의 생생한 이치를 체득한 천지인 삼재 중에서 신인 곧 무(巫)적 존재로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풀>의 은폐된 내레이터가 무적 존재라고 해석해도, 풀이 외세와 맞선 민중의 은유라는 기존 해석이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시인의 존재는 무엇인가, 시인과 시적 화자와의 존재론적인 관계는 무엇인가, 하는 의미심장한 반성적 질문을 통해, 마침내 ‘시란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시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질문과 대답 과정에서 진정한 시는 무위이화 속에서 나오는 하나의 유기체적 존재로서 시인과는 별도로 스스로 기운을 발산하는 ‘창조적 유기체’일 수 있다는 ‘생명의 시학’에 이르게 되고, 시인의 존재도 무위이화의 도(道)에 따르는 자기 안에 근원적 생명력을 보여주는 영적 존재임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김수영의 시 정신은 데뷔작으로 알려진 <묘정의 노래>에서도 은폐되어 있습니다. 이 데뷔작에는 음양오행론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깊이 작용하면서 남방 음양오행으로는 불(火)을 지키는 신의 상징으로서 주작(朱雀)과 주작성(朱雀星)의 존재를 기리고 있어요.

이는 음양오행의 조화와 그 운행을 관찰하고 조선 왕조의 흥망과 관련하여 음양의 시간이 순환에 대하여 노래합니다. 이 음양의 반복적 순환에 대한 인지는 <풀>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김수영의 시를 분석하는 데 M.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유효한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음양의 조화 원리로서 귀신의 존재와 운동 그 귀신의 들고남을 자기 정신으로 직관하고 통찰하는 무적(巫的) 초월자로서 김수영 시인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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