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해냄출판사, 2022)

[문학뉴스=박수빈 기자] 소설가 김탁환의 산문집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가 나왔다. 책은 1년 동안 섬진강 옆 집필실에서 초보 마을소설가이자 초보 농부로 지낸 기록이다. 농부로서 고군분투는 물론 창작을 향한 소설가의 치열한 생활을 담아내며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하염없이 걷고 원 없이 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던 27년 차 소설가 김탁환. 어느덧 작가로 새로운 10년을 계획해야 할 시기에, 그는 익숙한 글감에 젖어 늙어가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다가가서 살피고 사귀며 글을 쓰고자 결심한다.

이를 위해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의 이동현 대표와 동행을 그려냈던 전작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에서 맺은 인연으로 곡성에 집필실을 마련하고 서울을 미련없이 떠났다. 섬진강 옆 집필실에서 글을 쓰고 텃밭도 가꾸며 살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 첫해의 사계절을 겪으며 서툴지만 한 걸음씩 디딘 마음들을 신작 산문집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에 생생히 담았다. 일주일에 사나흘씩 강과 들녘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생각하며 기록한 일상과 농민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엮었다.

이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가가 마주한 자연의 풍경과 그때 먹은 마음과 해야 할 일을 ‘인디언 달력’처럼 구성한다. 작가는 시금치를 솎으며 단어와 단어 사이의 적정한 거리를 생각하고, 못줄에 맞춰 모내기를 하며 논바닥에 글을 쓰는 듯한 기분으로 자신의 문장을 돌아본다.

야외를 쏘다니며 나물과 독초를 구분하지 못한 순간에 정확하게 알고 쓰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길 위에서 뜻밖의 죽음을 목격하며 자연스러운 생태계의 순환을 떠올린다. 열여섯 살 노견, 복실이의 느릿느릿한 걸음을 보며 천천히 가족과 함께 늙어가는 행복을 생각한다.

섬진강가로 내려온 후, 작가는 손을 쓰고 발로 걸으며 생긴 몸의 변화가 생각으로 이어져, 새로운 일에 대한 시작을 다짐한다. 미실란을 플랫폼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생명과 환경을 지키는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나간다. 생태 워크숍부터 이야기 학교까지 마을주민을 위한 강의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며 마을살이를 하는 구성원으로서 역할도 잊지 않는다.

또한 15년 넘게 아끼며 읽어온 책들을 골라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을 열고, 책방지기로서 첫발도 디딘다. 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일을 하더라도 그 중심은 소설 집필이다. 일기 곳곳에 작가로서 풀리지 않는 구절들을 두고 물러서지 않는 치열함이 배어 있다.

그 성실함의 결과물이기도 한 이 책은 시, 수필, 판소리 등 다양하게 변주한 리듬이 살아 있고, 맑은 물맛과 진한 흙내를 머금은 문장으로 가득하다. 더불어 베짱이도서관 박소영 관장이 그린 색연필화는 온기와 생명력을 더한다.

(김탁환 작가. 사진=해냄 출판사 제공)

김탁환은 군항 진해에서 태어났다. 마산과 창원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시를 습작하다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신화와 전설과 민담, 그리고 고전소설의 세계에 푹 빠져 지냈다.

그리고 해군사관학교에서 해양문학을 가르치며, 첫 장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와 첫 역사소설 <불멸의 이순신>을 썼다. 그 외에도 <나, 황진이>, <리심>, <거짓말이다>, <살아야겠다>, <이토록 고고한 연예> 등 30편의 장편소설과 3권의 단편집, 3편의 장편동화를 냈다.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엄마의 골목> 등 다수의 에세이와 논픽션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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