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기억해야 할 희생의 역사, 그날의 열기"

뮤지컬 '광주' 5월 1일까지 CJ토월극장에서

[문학뉴스=이숙영 기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아픔을 담아낸 뮤지컬 <광주>의 세 번째 시즌이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뮤지컬 <광주>는 광주문화재단이 2019년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해 ‘2019 님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해 탄생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활동했던 실제 인물을 모티브 삼아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군부에 저항했던 평범한 시민들의 정신과 투쟁을 무대 위에 풀어낸다.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제작사 라이브㈜의 강병원 대표가 프로듀서상을 수상한 만큼 뮤지컬 <광주>의 작품성을 의심한 바 없을뿐더러, 기자가 이 작품을 기대했던 또 다른 이유는 극작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 연출가 때문이다.

(뮤지컬 <광주> 공연사진. 사진=라이브(주),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2011년 대한민국 연극에 주어지는 모든 상을 휩쓴 화제작 <푸르른 날에>. 이 작품도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다. ‘제3회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했던 정경진 작가의 희곡을 원작으로 2011년 초연돼 이듬해부터 매해 5월이면 지금은 폐관된 남산예술센터에서 올려져 평단과 관객 모두의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각색과 연출을 맡았던 고선웅 연출가는 5.18이라는 아픈 역사를 ‘21세기 명랑 신파극’으로 새롭게 조명했다. 서로 사랑했지만, 역사의 소용돌이에 어긋날 수밖에 없던 한 남녀의 30년 인생 역정을 과장된 대사와 허를 찌르는 유머로 풀어내 깊은 인상을 남겼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동시대 관객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의 진정성과 본질을 강조한 바 있다.

(뮤지컬 <광주> 공연사진. 사진=라이브(주),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고 연출가에 의해 조금은 독특한 스타일로 그려졌던 연극 <푸르른 날에>가 광주의 비극이 남긴 상처와 아픔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린 인물들의 삶을 깊이 포착하고 있다면, 뮤지컬 <광주>는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분투했던 소시민들의 모습을 너무도 담담하게 담아낸다.

뮤지컬 <광주>에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이 따로 없다. 시민군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야학교사 ‘윤이건’이 있고, 무고한 시민들이 폭행당하고 연행되는 참상을 목도하며 광주의 진실에 눈 뜨며 고뇌하는 505 부대 편의대원 ‘박한수’가 있지만 그들의 서사에 집중하지 않는다. 평화를 위해 함께 피 흘리며 싸웠던 광주 시민들 모두의 숭고함에 초점을 맞춘다.

광주시민들이 왜 무기를 들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이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무엇인지, 지나간 역사 속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들의 상황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쓴다. 그렇기에 자칫 산만해 보일 수 있는 많은 캐릭터의 서사도 결국에는 애틋한 시선으로 끌어안게 된다. 익숙해지지 않아 다소 불친절하게 들리는 음악도 이야기가 흘러가며 서서히 무대 위 서사에 녹아진다. 13인조의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은 가슴 속 뭉클함을 더하며 객석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게 한다.

(뮤지컬 <광주> 커튼콜 사진. 사진=문학뉴스 제공)

"우리들의 사랑·명예·이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실제 가두방송이었던 이 대사는 커튼콜 이후에도 오랜 여운을 남긴다. 뮤지컬 <광주>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핵심과도 같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땅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온 몸이 떨리는 공포 속에서도 무릎 꿇지 않았던,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던 이들의 저항과 피 값에 빚진 삶이다. 머리로 기억되는 한 줄의 역사로 끝나게 놔두지 않고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오늘의 이야기'로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각인시켜 주는 것. 그것이 예술이 우리 곁에 살아 숨 쉬어야 하는 이유이자, 뮤지컬 <광주>가 존재하는 의미일 것이다.

뮤지컬 <광주>는 기획 단계부터 세계화 진출을 목표로 했다. 제작진은 11월쯤 브로드웨이에서 쇼케이스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희망으로 가득한 새로운 날을 바라보며 함께 춤추며 서로를 위로했던 광주 시민들의 외침이 그곳에서도 아름답게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뮤지컬 <광주>는 5월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어 14일과 15일에는 광주 빛고을 시민문화관 무대에 오른다. 광주에서 힘 있게 울려 퍼질 ‘님을 위한 행진곡’과 가슴속으로 잔잔히 파고드는 뜨거운 서사가 5월 광주 시민들의 마음에는 어떻게 다가설지 궁금해진다.

2torok@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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