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김수영 문학상은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층 더 높아진 기대 속에서 선정됐다)

[문학뉴스=백승 기자] 제40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가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층 더 높아진 기대 속에서 진행된 김수영 문학상 심사는 예상과 달리 빠른 속도로 결론에 이르렀다. 이견을 허락하지 않은 독보적인 한 작품 때문이었다. 이번 심사에 논쟁이 있었다면 작품과 작품 사이가 아니라 최재원이 품고 있는 세계에 대한 서로 다른 호기심과 기대 때문이었을 정도로, 당선작에 대한 심사위원 (이수명, 조강석, 허연)의 지지는 확고했다.

이번 시집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는 한 편 한 편마다 시인에 의해 독창적으로 설계된 언어와 형식 위에서 이 세계의 표면과 깊이를 동시에, 그리고 풍부하게 담아낸다. 민음사 간. 1만원.

문단 안팎에서는 언어와 언어 사이를 떠돌며 무수한 가능성을 경험하던 중 우리 앞에 도래한 ‘최재원’이라는 이름, 그 낯선 열기와 광채로 가득 찬 매혹적인 세계가 이번 시집을 통해 활짝 열렸다.

너와 먹고 싶지도 자고 싶지도 않다. 나는 너를 박제하고 싶다. 약품 처리된, 내장이 없는, 까맣게 구슬이 되어 버린 눈동자, 그런 박제 말고 너의 가장, 가장 표면에 있는 것들이 너의 가장 아득한 곳을 담을 수 있도록, 가장 표면에 있는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숨도, 생명도, 심지어 내장이 라 할지라도. 너만은 시간의 흐름에서 구해 주고 싶다. 그것은 박제와 가깝지만 박제는 아니다. 그것은 어떤 흔들림의 보장, 니가 하루 종일 거울 앞에 서 있을 자유, 니가 끝없이 스스로에게 빠져들 자유, 끝없이 자신을 소모할 수 있을 힘.

―「나랑 하고 시픈게 뭐에여?」에서

시인 허연은 “때로는 능청스럽게,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수줍은 듯 상황을 미학적으로 환기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최재원의 시를 평했으며, 이수명 시인도 일상과 세속에 직접 육박해 들어가는 과감함에서 단연 독보적이다고 평가했다.

조강석 (문학평론가)은 “사유의 시계에 포착된 바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밀고 가는 힘과 그 사유의 리듬을 과감하게 변주하는 이미지들의 조화가 돋보인다”고 말했다.

지난2019년 데뷔한 최재원은 아직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신예지만 독자를 끌어들이는 에너지만큼은 신인의 그것이 아닌 듯 하다는 게 문단 안팎의 평가이다. 최재원의 시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은 거침없이 펼쳐지거나 접혀지는 형식이다. 3행으로 끝나는 짧은 시부터 원고지 50매 분량에 달하는 산문시까지, 그동안 쌓아올려진 시적인 것들의 틀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면서도 시의 핵심으로 돌진하는 에너지는 소용돌이와도 같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언어들로 이룬 독창적인 시어의 세계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이론과 추상을 담아내는 형이상학적인 언어들뿐만 아니라 욕설, 사투리, 온라인 대화 메시지 등 그가 건져 올린 언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해설에서 소유정(문학평론가)는 “어디로 가는지보다는 어디에서 벗어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처럼 최재원 시의 화자는 이후의 행방보다 지금-여기의 억압으로부터 탈주를 희망한다. 이는 지금보다 “조금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불가항력적이고 불합리한 믿음”에 기인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믿음, 기댈 곳 또한 오직 자신뿐인 이가 행하는 온몸의 이동은 그간 화자가 귀 기울여 왔던 존재의 성장과도 닮아 있다. 제 몸과 꼭 닮은 허물을 남기고 떠나는 매미처럼 몸을 벗어난 자리에는 낯설지 않은 신체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있었던 자리”는 더 이상 타인에 의해 존재가 지워진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나’의 선택과 의지로 떠나온 과거의 장소이자 기억이며 정체성이다“고 분석했다.

시인 최재원은 형식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표현 방식은 다양한 도시를 경유하며 살아온 시인의 생의 이력과도 닮아 있다. 경상도와 강원도, 뉴욕과 서울 등 많은 도시에서 거주하며 여러 언어 속에서 시차를 경험한 시인은 물리학과 시각 예술을 공부하며 언어라는 모험을 감행해 왔다. 현재 최재원은 미술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 가운데 미술 비평과 번역을 병행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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