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욱 교수의 두번째 평론집 문학의 열린 길 - 사유·정동·리얼리즘' 표지)

[문학뉴스=백성원 기자] 특유의 균형감 있는 섬세한 독해로 오래전부터 평단에 정평이 난 한기욱 교수의 두번째 평론집 <문학의 열린 길 - 사유·정동·리얼리즘>은 문학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 시대감각을 또 한번 날카롭게 갱신함으로써 최상의 완성도를 갖춘 평론집이라고 할 수 있다.

영문학자로서 외국문학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담아낸 점도 뜻깊은데다, 그의 평론 들이 서구중심으로 쏠리지 않고 유력한 이론과 비평에 맞선다는 점에서 놀랍다. 창비 펴냄. 2만원.

지난 10년 동안 발표한 문학비평들을 묶은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1부는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한국사회를 진단한다고 있다. 2부는 본격적인 작품론/작가론이며, 장편소설론을 중심으로 한 3부는 당대의 논쟁이 가미되어 있다. 4부는 세계문학/미국문학 평론을 모은 것으로 포스트모던 논자들(네그리와 하트, 지젝, 아감벤, 들뢰즈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촛불혁명 시대에 한국문학은 어떤 뜻깊은 변화가 있었는가?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주체의 변화와 촛불혁명’에서 이 물음에 응답하는 방편으로 주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 시대의 혁명과 문학을 함께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혁명이 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라면 혁명의 주체도 근본적인 자기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한교수는 말한다. 또 기존의 낡은 관계와 관행, 가치관에 맞춤하게 체질화된 자신은 바꾸지 않은 채 주어진 세상을 확 바꾸겠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고 경고한다.

이어 저자는 문학과 혁명의 관계를 논한 사례를 살펴보면서, 혁명기에는 작가의 출신성분이나 사회적 공공성을 앞세우기 쉽고 이런 경향이 팽배해지면 공공성의 이름으로 창조성을 억누르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말한다. 반대로 창조성을 빙자하여 공공성을 어지럽힐 가능성도 상존하기에 진상을 가려줄 비평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이 지점에서 문학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되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공유영역이라는 ‘문학 커먼즈(commons)론’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즉 ‘커먼즈’라고 하면 으레 공유(共有)와 공공(公共)을 먼저 생각하게 되지만, ‘문학이라는 커먼즈’의 핵심은 그것이 작가와 독자를 포함한 당대 사람들의 ‘협동적 창조’라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가족의 재구성’을 통해 가족서사는 근현대 한국문학에서 큰 비중을 점하면서 중심적인 흐름을 형성해왔다고 말하는 저자는 근대의 여러 사회집단 가운데 가족은 기초 단위이자 학교와 더불어 사회성원들이 그 사회의 주요한 가치를 전수하고 훈련받는 교육의 장이라고 서두를 뗀다. 그런데 유교적 가부장의 권위와 혈연적 유대가 유별나게 강했던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서구에서라면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가 수행할 법한 일의 상당부분을 가족이 떠맡기도 했다고 전제한다. 가령 근대화 과정에서 산업화에 필요한 싼 값의 노동력 제공뿐 아니라 육아와 가사, 노령인구 돌보기의 책임까지 도맡은 것이 가족이었다는 것. 국가가 별다른 보상이나 지원 없이 ‘근대화의 산업역군’을 요청했을 때 그에 부응한 쪽이 기업이나 시민사회가 아니라 가족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한교수는 “세계사에 유례없을 정도로 급격하고 복합적인 ‘압축적 근대성’을 달성한 주된 동력으로 강력한 가족주의의 전통이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고 전한다.

한기욱교수는 “이 글들을 쓰는 동안 한국 사회와 문학에 가장 심대한 변화를 불러일으킨 사건은 물론 2016년 말에 시작된 촛불혁명이다. 촛불혁명의 혁명성을 어디에 둘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로서는 그 핵심이 박근혜정부의 탄핵과 정권교체 자체라기보다 그를 포함한 여러 종류와 층위의 기득권 장벽을 돌파함으로써 한국사회의 기본적인 체질을 바꿔놓는 일이라고 본다며 ‘촛불정부’를 자임한 정부 출범 이후에도, 그리고 촛불 5주년을 맞이하는 지금도 촛불혁명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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