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원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다만 보라를 듣다' 표지)

[문학뉴스=백승 기자] 강기원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다만 보라를 듣다>가 민음의 시 292번으로 나왔다.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바다로 가득 찬 책>부터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지중해의 피>에 이르기까지, 강렬한 색채의 대비와 혼재로 독보적인 미적 세계관을 선보여 온 강기원 시인이 7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이다.

신체와 사물의 해체, 형태와 색의 분리라는 과감한 상상력을 선보여 온 강기원 시인의 시 세계는 독자적인 힘을 얻어 움직이는 색과 형태 들이 자유롭게 만들어 낸 기이하고도 낯선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1만원.

이번 시집에서는 육체의 경계를 넘어 존재를 탈바꿈하는 ‘변신’뿐만 아니라 ‘색’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색’이 되는 감각의 전이, 공감각의 영역으로까지 그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은 변신과 전이라는 시적 환상을 통해 시인은 이제 삶과 죽음, 유한과 무한의 구분이 없는 세계, ‘탈경계’의 문을 두드려 활짝 연다.

가르릉을 버리니

아가미가 생기더군요

담을 넘지 않으니

부레가 부풀어요

긴 꼬리 감추니

어이없는 지느러미가 돋았죠

―「여울고양이」에서

특히 이번 시집의 시편들은 신비로운 동식물과 사물 들이 가득 차 있는 한 권의 백과사전 같다. 시의 제목들만 살펴보아도 ‘여울고양이’, ‘나비잠자리’, ‘물 도서관’, ‘호금조’, ‘모린 호르’, ‘귀면각’, ‘비익조’처럼 이름조차 낯선 존재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시인은 이들을 발견해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각자의 형태와 색이 고스란히 담긴 그들의 이름을 곱씹어 보고, 그들의 표면을 구성하는 색과 형태를 하나하나 분리해 상상한다. 고양이의 눈을 닮아 ‘여울고양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민물고기는 시인을 통해 아가미, 부레, 지느러미가 없었던 이전의 모습, 울음소리와 긴 꼬리를 가졌던 고양이라는 전생을 얻는다.

이렇듯 경계를 넘어 다른 존재로 변신하는 장면은 자주 등장한다. 이런 변신을 통해 강기원 시인이 거듭 발견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모든 존재가 필연적으로 가진 ‘모호한 경계면’이다. 고양이 눈을 가진 물고기처럼, 다섯 손가락뼈를 가진 고래처럼. 서로 다른 종이 가진 형태적 유사성이 암시하는 변신의 가능성이다. 강기원 시인의 시에서 변신은 소멸과 영생을, 유한한 신체를 벗어나 무한한 생을 상상하게 한다.

내 말만큼 느린 지중해 가시달팽이

만이천 마리 가시달팽이를 끓여 얻는 손톱만큼의 보라

달팽이의 피, 말이 되지 못한 고통의 진액

나는 다만 보라를 듣는다

―「Color Hearing」에서

강기원 시인에게 ‘색’은 외부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라, 시인의 시선이 외부에 닿을 때 새롭게 생겨나는 감각의 세계로서 꾸준히 다뤄져 왔다.

이번 시집에서 강기원 시인은 색으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모험을 지속해 나가면서도 색을 소리로, 소리를 색으로 유연하게 변화시키는 감각의 전이를 시도한다. 호금조의 샛노란 노랫소리, 빙하처럼 싯푸른 비명, 불에 끓여지는 가시달팽이의 보라색 소리. 이러한 감각의 전이를 두고 송재학 시인은 해설을 통해 “비명을 싯푸른 색채의 문양으로 전이시킨다는 것은 일종의 기록”이라고 말하며, 강기원의 색채 감각이 비로소 “고통의 치유라는 메커니즘”으로 확장되었다고 그 변화의 의미를 짚는다.

강기원의 시에서 말하지 못한 고통, 끝내지 못한 울음, 들어 줄 이를 찾지 못한 웅얼거림은 존재가 죽고 사라져도 색이 되어 영원히 남는다. 날것 그대로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은 색은 다시 영원히 빛바래지 않을 소리가 되어 시인의 귀에, 그리고 우리의 귀에 닿는다. 죽어도 죽지 않고 못다 한 질주를, 노래를, 기다림을 계속하는 색채의 소리를 듣는다.

phaki5568@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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