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출판사가 펴낸 린지 저먼의' 멈춰 선 여성해방' 표지)

[문학뉴스=백승 기자] 외모에 대한 압력, 저임금·장시간 노동, 일과 가사의 이중 부담, 너무 비싼 보육비 … 이 시대를 사는 여성이라면 흔히 공감할 키워드일 것이다. 여성의 삶은 고되다. 그리고 여성의 삶이 힘든 이유 하나는 그들이 차별받기 때문이다. 2020년 우리나라 여성의 시간당 임금은 남성의 69.6퍼센트에 불과했다. 비정규직 비율도 여성이 더 높으며, 시간제 노동자도 여성이 훨씬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직장에서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집에 와서는 가사 노동과 육아에 시달리고, 일과 가사를 잘해 내면서도 예쁘고 섹시해야 한다는 압박까지. 이중, 삼중의 괴로움을 겪는 여성의 삶.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왜 이다지도 고되고 힘들까? 린지 저먼의<멈춰 선 여성해방 - 150년간 여성과 남성의 삶에 일어난 변화와 여전한 차별>이 나왔다. 책갈피 펴냄. 이장원 옮김. 1만7000원.

이 책은 오늘날 여성이 처한 진짜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한편으로, 지난 수십 년간 여성의 지위가 급격히 향상됐으나 완전한 평등을 이루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같은 변화는 사회 전반의 더 폭넓은 변화와 함께 벌어졌는데, 그로 인해 섹슈얼리티, 가족 생활, 노동의 측면에서 여성의 삶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남성의 삶과 의식도 크게 달라졌다.

이 변화 과정은 한국 사회에 일어난 변화와 너무나 흡사해 읽다 보면 한국의 현실을 묘사한 것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은 이런 변화 과정을 검토하며 여성해방을 이루기 위한 그간의 노력이 남긴 성과와 한계를 살피고, 진정한 여성해방을 달성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제2차세계대전은 역설이게도 많은 여성의 삶이 고양된 시기 중 하나였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전례 없는 규모로 노동인구로 빨려 들어가면서 근본적인 격변이 일어났다. 여성이 전통적으로 “남성의 일”로 여겨지던 군수산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여성 임금은 극적으로 상승했고, 여성들은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수준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 남편들이 징집돼 외국에서 싸우는 동안,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집을 떠나 살며 장시간 일을 하게 됐고, 제한적으로나마 집 밖에 나가서 독립성을 누릴 정도로 돈을 벌게 됐다. 이 모든 것이 성을 대하는 태도와 낡은 도덕을 무너뜨리는 데 영향을 끼쳤다. (P. 44~45, 제2차세계대전 시기 여성의 독립성 증대)

오늘날 여성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집 밖에서 일을 한다. 또, 많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은 뒤에도 전일제 일자리를 유지한다는 점이 큰 변화다. 여성들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경제적 압박을 강하게, 자주 받지만 여성들이 일을 하는 조건은 훨씬 열악해졌다. 예를 들어, 공공 부문이 민영화되면서 노동조건이 악화됐다. 복지국가도 공격을 받으며 복지가 담당하던 부분은 점점 더 개별 가정에 부담으로 떠넘겨졌다. 이제 여성들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라고, 그것이 여성의 책임이라고 요구받는다. 거기에 적합한 교육을 받고 기술을 익혀 노동시장에 진입할 능력을 갖추는 것도 각자의 책임이라고 한다. 이제 “이중의 굴레”라는 말도 여성들의 처지를 묘사하기에는 부족하다. (P. 129~132, 이중, 삼중의 굴레)

오늘날 광범하게 퍼져 있는 섹슈얼리티의 표현들은 도저히 성 해방이라고 할 수 없다. 성을 바라보는 지배적 시각은 평등이나 개방성과는 거리가 멀다. 포르노, 섹스 토이, 선정적 사진이 실린 남성 잡지 등의 상품과 서비스에 상당한 돈이 지불되지만, 성적 관계에서의 다정함이나 사랑이나 친밀함은 빠져 있다. 남성과 여성에게 즐거움을 줘야 할 인간관계가 고깃덩어리나 중고차처럼 가격표가 붙은 상품으로 변질된다. 성 해방의 핵심으로 성적 자유를 위해 운동하고 원하는 대로 마음껏 읽고 시청할 권리를 요구했던 여성들로서는 여성의 성적 자유가 신장된 상황으로 다른 누군가가 이득을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P. 61~63, 성 해방인가 성 상품화인가?)

저자 린지 저먼 (Lindsey German)은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2백만 명이 참가한 2003년 반전 시위를 조직한 ‘전쟁저지연합(Stop the War Coalition)’의 사무총장이다. 여성과 아이들의 삶을 파괴하는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뿐 아니라, 정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4년 영국 급진좌파 정당 ‘리스펙트(RESPECT)’의 런던 시장 후보였으며, 2005년에는 런던 웨스트햄에서 같은 당의 총선 후보로 출마해 19.5%를 득표, 보수당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2008년에는 런던 시장 선거에 ‘리스펙트’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phaki5568@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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