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빛나는 영원한 시대의 걸작, 북해의 별 레트로판 1~15 세트 - 전15권 - RETRO PAN)

[문학뉴스=백승 기자]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순정, 김혜린의 <북해의 별>을 복원한다. 지난 1983년 처음 만났던 그 느낌, 그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다. <북해의 별>(전 15권)은 거북이북스에서 RETRO PAN이라는 새 레이블로 선보인 <아르미안의 네 딸들>(신일숙, 전 20권)에 이은 두 번째 명작 복원 프로젝트다. 기억의 저편에 있던, 아스라한 명작의 추억을 생생하게 소환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만화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북해의 별>은 만화가 김혜린의 데뷔작이다. 스물하나 앳된 나이에 어떻게 이런 대하 장편을 홀로 기획하고, 쓰고, 그려냈을까? 작업 도구는 종이와 펜과 잉크, 그리고 몇 장의 스크린톤이 전부다. 눈보라를 표현하려면 칫솔에 화이트 물감을 묻혀 원고지에 뿌려야 했다. 포토샵도 스케치업도 없던 시절, 오로지 수작업만으로 한 올 한 올 그려낸 흑백만화의 진수 <북해의 별>! 김혜린이 피, 땀, 눈물의 장인 정신으로 완성한 2,400장 만화 원고가 실물로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찼다.

이번 RETRO PAN은 38년 전, 처음 선보인 <북해의 별> 프린스판을 근간으로 한다. 오리지널 표지를 복원하면서, 북해를 닮은 짙은 블루와 별처럼 반짝이는 실버의 컬러 대비로 미적 완성도를 높였다. 박스 세트로 새롭게 탄생한 <북해의 별> RETRO PAN. 인생 만화를 새롭게 소장하는 기쁨, 그 감동의 전율을 다시 맛보는 즐거움은 열혈 순정만화 독자들에게 다시없을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북해의 별> 원고에 붙어 있던 빛바랜 사진 식자를 지우고, 낡은 트레이싱지를 떼고, 원고에 남은 여러 편집부의 흔적을 없애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2,400장 모든 원고를 새롭게 스캔하고 보정, 복원한 이번 RETRO PAN은 작가가 종이 원고와 함께 이제 데이터로도 소장할 수 있어 그 의의가 크다.

만화평론가 박인하씨는 <북해의 별>이 마스터피스가 될 수 있는 까닭에 대해 “1980년대 많은 만화방 만화가 신파를 버리고 낭만주의를 담았다. 1980년대 만화방 만화의 낭만성은 어른들을 만화방으로 끌어들였다. <북해의 별>도 그렇다.”며 “만화의 인물 모두가 거대한 운명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고, 필요하다면 싸우고 빼앗는다. 하지만 어느 만화도 낭만주의에서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북해의 별>을 빼곤 말이다.”고 강조했다.

-피와 수난의 낭만주의에서 혁명으로

<북해의 별>은 18세기 유럽 대륙을 배경으로 가상의 국가 보드니아의 공화 혁명을 그린 만화다. 1752년 봄, 유리핀 멤피스가 열 살이던 때에 1권이 시작해 1777년 8월, 보드니아 공화국 설립으로 끝이 난다. 25년 동안 보드니아 왕국의 왕위는 퓨델 5세, 퓨델 6세에 이어 퓨델 보르티크 3세로 이어진다. 총리 악셀 화라 세력, 퓨델 6세의 러시아 출신 왕비 에카데리나 세력, 검찰총장인 잉게마르 버그만 세력 등 다양한 세력의 권력 투쟁이 이어진다. 사랑, 배신, 음모 같은 여러 사건이 마치 거대한 강처럼 굽이쳐 흐른다.

<북해의 별>은 사랑과 혁명 두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북해의 별>의 사랑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남성 주인공 유리핀 멤피스와 여성 주인공 아니타 에델라이드의 사랑이 워낙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지만, 많은 사랑의 양상이 나타난다. 유리핀 멤피스와 터키 출신 해적왕 무스타 하리의 ‘신뢰’의 사랑, 음모에 휘말려 감옥에 들어온 유리핀 멤피스를 고문하다 그를 존경하게 된 마르키 인쥬르베가 보여준 ‘존경’의 사랑. 문제적 주인공 비요른 누벨은 남성이지만 자신의 매력적인 육체로 다른 남성을 탐하는 ‘유혹’의 사랑을 보여주기도 한다. <북해의 별>은 이렇게 수많은 인물을 등장시켜 사랑의 여러 모습을 그리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랑의 양상을 발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북해의 별>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허투루 넘길 수 없게 만든다. 작가가 정교하게 설계하고 배치한, 출판만화 미장센의 미학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빼곡한 대사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빼어난 문학적 표현은 감탄을 자아낸다. 장면 장면에 담긴 내레이션은 한 편의 시처럼 깊은 여운과 감동을 선사한다.

-북쪽 바다의 장엄한 대역사 환상 교향곡 <북해의 별>!

주인공 유리핀 조안 아우구스트 멤피스.

해상 강국 보드니아 왕가의 총명한 외손이자 바다를 누비는 유서 깊은 가문의 아들이다. 걸음마보다 헤엄을 먼저 배운 유리핀은 북구의 대서사시 <에다> 속 신의 아들들처럼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고, 바다로 돌아가는 운명을 지녔다. 소년 유리핀은 아니타 에델라이드 아기 공주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운명적인 사랑을 직감한다.

마드보르이 해군 제1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6대양을 누비며 혁혁한 공을 세우는 유리핀. 27세에 해군 특전함대의 총사령관으로 승진할 정도로 빛나는 별이지만, 빛은 어둠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 모략과 질시, 두려움의 세력은 국왕보다 더 추앙받는 유리핀에게 반역의 덫을 씌워 걷잡을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살아서는 나갈 수 없는 레오빅보르이 수용소에서도 유리핀은 별처럼 빛난다. 반역의 낙인 A가 찍힌 종신 유형의 수형자지만, 탁월한 인품이 주는 청명한 영혼의 아우라는 감춰지지 않는다. 작가는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요구되고, 모두가 꿈꾸는 지도자의 모습을 유리핀에게 투영했다. 진정한 지도자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상처를 어루만지고 희망을 불어넣는 존재다. 죽음의 땅에서 미래가 없는 수감자들과 미래의 꿈을 나누는 유리핀처럼. 작가는 이렇게 유리핀 멤피스라는 주인공의 매력을 서서히 고조시키면서, 등장인물들이 그의 인품에 빠져들게 만든다. 더불어 독자들도 그의 아름다운 마력에 매혹당한다.

작가는 <북해의 별>을 통해 숨 가쁜 사건에 휘말리고,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고,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스러져갈지라도 자유를 향한 의지를 다지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라는 가슴 뜨거운 메시지를 전한다.

온갖 인간 유형을 조명하고, 삶의 절실함과 죽음의 허무함을 전하고, 역사와 사회 그리고 민중과 혁명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북해의 별>은 다시 만나기 힘든 탁월한 작품이다. 자유, 평화, 박애의 가치가 전편에 흐르는 위대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의 동반자 유리핀과 에델라이드가 나누는 숭고한 사랑은 한없이 아름답고 로맨틱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phaki5568@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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