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시인선 162권째인 김현 시인의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표지)

[문학뉴스=백승 기자] 문학동네 시인선 162권과 163권이 출간됐다.

김현 시인의 다섯번째 시집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는 문학동네 162권째로 나온 시집으로 데뷔 후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김현 시의 매력으로 거침없는 위트와 탁월한 언어감각,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 원이사가 조부장 똥꼬에 얼굴을 박고

그윽하게 말했잖아 자기 인생의 비전을

조부장이 구운 파를 꼬치에서 빼서 원이사 입에 넣어주면서 방귀를 얼마나 잘 뀌는지

둘이 생쇼를 하더라고 인생의 맛이라잖아

나도 개다리춤을 췄잖아 인생 뭐 있나

여보, 미안해

나는 인생을 글로 배워서

잠을 자다가 말고 눈물이 샘솟아서 당신이 자꾸 오라고 손짓을 했는데

가긴 어딜 가느냐고 거기가 어디라고 가느냐고 내가 손짓을 했잖아

내려오라고

꿈은 현실이랑 반대라고 죽으면 살고 살면 죽는다고 했잖아

여보 당신이 꿈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내가 물어보지 못했더라

무섭다

저 끝에 뭐가 있을까 여보

오늘도 무사히

눈물 기둥을 고이 접어넣었다

-「아멘」에서

시인은 때로 잔혹한 현실에 냉소하고 낙담하기도 하나, 마침내 세계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소수자들 삶의 비애를 감지해내는 섬세하고 사려깊은 시선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더욱 확장시키는 시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 시인은 「서정」이라는 시에 이렇게 썼다. “홍수 보아라/ 어제 네가 보내준 가을을 잘 받았노라/ 어디서 이런 가을을 찾아서/ 보내을까/ 그 가을에 언뜻/ 푸른 염소 한 마리를 넣고 싶더구나// 그러나/ 넣지 않았다”. 이는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세상의 풍경에 섣부른 서정을 더하지 않겠다는 시인의 다짐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에 담긴 재기발랄하면서도 다소 날선 시어들은 이러한 시인의 마음가짐에서 나온 것일 테다. 그러나 그렇기에 이러한 세계에서도 그가 기어이 발견해낸 서로를 향한 마음들이 더 큰 위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김현 시인은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호시절』 『낮의 해변에서 혼자』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산문집 『걱정 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 『질문 있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가 있다. 김준성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고 이윤설 시인의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 표지)

문학동네 시인선 163권인 고 이윤설 시인의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는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로 시와 더불어 연극과 시나리오, 드라마에서 활기차게 작품활동을 펼쳤던 이윤설 시인의 첫 시집이다. 시인의 첫 시집이지만 2020년 10월 10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시인의 1주기에 맞춰 펴내는 유고시집이기도 하다.

등단 후 15년에 이르는 동안 시인이 오래 다듬었던 시편들은 갑작스레 닥친 불행을 직면하여 언어화하는 가운데, 불행이 끝내 꺾지 못한 의지를, 세상과의 작별을 앞두고 남은 미련을, 사랑하는 존재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그리고 다음에 대한 기약을 담고 있다. 즉 <누가 지금 내 생각을 하는가>는 이윤설이라는 한 시인의 삶이 그대로 응축된 시집이자 삶이다.

왜 그렇게 쥐었다 폈다 꼬깃꼬깃해지도록 사랑했을까 오버

사랑해서 주름이 돼버린 얼굴을 버리지 못했을까 오버

엔꼬다 오버

(……)

태어나 참 피곤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려다오 오버

내 손에 쥔 이 편지를 부치지 마라 오버

희망이 없어서 개운한 얼굴일 거다 오버

코도 안 골 거다 오버

눅눅해지는 늑골도 안녕이다 오버

미안해 말아라 오버

오버다 오버

_「오버」 부분

고 이윤설 시인의 따스한 시선은 분명 사라지고 스러지는 것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지만, 스스로의 스러짐을 앞두고 시인은 삶에 대한 애증을 시로 승화시킨다. 그에게 삶의 모든 것은 원망스럽고 저버리고 싶은 것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과 애정을 떨쳐낼 수 없다. 시집의 후반부에선 긴 호흡마저 버거운 듯 짧은 호흡의 시들이 비탄처럼 짧게 이어지는 ‘이층침대’ 위의 순간들이 이어진다.

이윤설 시인은 1969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났다. 명지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를 수료했다.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었고, 2006년 조선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희곡집으로 『불가사의 숍』이 있다. 2020년 10월 10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phaki5568@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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