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뉴스=백승 기자]

지루함 속으로 더 흘러가기로 할 때

나는 머리채를 잡힌다.

나는 달아난다.

―「좋아하는 것들을 죽여 가면서」에서

일상의 사전적 의미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일상을 살아갈수록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구성한 것들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평온함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낯설 때 느꼈을 긴장감은 점점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 시편마다 새로운 공간과 세계를 창조하여 그 안에 머무는 인물들의 독특한 사고를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 임정민 시인의 첫 시집 <좋아하는 것들을 죽여 가면서>가 나왔다. 이 시집은 두 가지 태도를 한 몸에 지녔다. 시의 인물들은 잔뜩 긴장한 채 떨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미지의 지점으로의 모험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당찬 성정을 지녔다. 민음의 시 289권. 1만원.

임정민 시의 인물들은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긴장됨에서 평온함으로 흘러가기 마련인 일상의 흐름을 정반대 방향으로 거스른다. 그들은 삶이 지루해지려는 찰나, “머리채를 잡힌” 채 “달아난다.” 누군가 그 뒤를 쫓는 것이 아닌데도 끝없이, 적극적으로 도망친다. 인물들의 도망은 쫓기고 내몰리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닌, 망치를 들고 지루한 것들을 부수며 무뎌져 가는 시간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리는 적극적인 행위이다. 내게 익숙한 것들, 익숙해서 좋은 것들을 죽여 가면서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임정민 시 속 인물들은 그리하여 매일 새로운 곳에서 태어난다.

그의 시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달아난다. 시집 <좋아하는 것들을 죽여 가면서>는 그 달아남과 도망침의 생생한 기록을 담은 한 권의 ‘탈출 일지’다. 임정민의 시편들이 어디로부터 도망쳐 왔는지, 어느 곳에 도착했는지, 도착한 곳에서는 어떻게 존재하는지 읽어 내는 일은 저마다 무겁게 등에 진 권태를 어떻게 부술 수 있을지 가늠해 보는 일과 같다.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했던 공원의

공용 화장실 뒤편 풀이 자란 곳.

풀을 자른다.

구름.

풀을 자르고 난 후의 구름.

강당으로 가 보자.

무슨 체육을 하듯이?

무슨 총격전에 휘말린 듯이.

―「HEENT」에서

강아지야 강아지야

함께 춤을 추니 즐겁지

이제 그만 내려와 들어가

선을 따라서 통로 속으로

개의 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곳으로

손님이 왔으니 이제 너를 완성해라

예전처럼 흰 상자야

뚜껑을 닫으면 그만이다

―「공상과 포위」에서

엄마는 기분 좋은 졸음을 느끼고 있었지. 그런데 문득 몇 가지 사실이 떠올랐지. 할머니는 없지. 엄마가 그녀의 딸이었을 때 그녀는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지. 엄마는 딸이 걱정되었고 친구들에게 말했지. 나는 갈게. 급한 일. 엄마는 급한 일을 향해서 뛰었지. 등에 대고 친구들이 소리쳤지. 계속 그렇게 살아. 그런 걸 잊을 수는 없지.

―「갈증」에서

추천의 글에서 송승언 시인은 “먼 미래에 그는 말을 찾아간다. 이미 모든 말들이 소진된 땅 위에서. 자율적으로. 이미 모든 말들을 써 버린 세계에도 영원히 쓰이지 않는 말들이 있다는 듯이. 좋아하는 것들. 내게 익숙한 것들을 죽여 가면서. 모르는 사람처럼 행세하면 모르는 사람 같다. 앎은 힘이다.”라며 “우리는 그 힘을 나침 삼아 우리가 잘 모르는 미지의 지점까지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모름은 무한한 힘이다. 그 힘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악마들이다”고 썼다.

한편 임정민 시인은 젊은 30대 시인으로, 199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15년 《세계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phaki5568@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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