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문학론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으로 출간

[문학뉴스=윤지현 기자] 유계영 시인의 첫 번째 에세이집 <꼭대기의 수줍음>이 민음사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으로 출간됐다.

2010년 데뷔한 유계영 시인은 <온갖 것들의 낮>,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등 네 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슬픔 이후까지 시선을 뻗는 섬세한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는 왜 자신은 큰일에는 무감한데 작고 사소한 일에는 항상 가슴이 요동치는 것인지 반복해서 되묻는 사람이다. 자신을 향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책 <꼭대기의 수줍음>에는 시인의 마음을 흔드는 마주침들이 가득하다.

이 만남들은 깊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쉽다는 점에서는 작고 사소하다. 하지만 한 사람 혹은 한 생명체를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한 편의 시가 될지도 모를 장면들이라는 점에서는 결정적이고 특별하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넉넉하게 남아 있는 시간의 표면 위를 둥둥 떠가는 거야. 해초처럼 부드럽게. 내가 너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고 네가 나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서. 일하지 않고 일하며.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며.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삶의 형식을 우리가 발명할 수 있을까? -'노동 없이 노동하며 사랑 없이 사랑하는'에서, 102쪽

반드시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말할 수 있는 데까지 말해 보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거창하고 쑥스러운지 모르겠다. 평상시 떠들고 다니는 나의 말들이 대개 이렇게 무모하다 느낀다. 뻔뻔해지거나 용감해지는 것 말고는 이 문제를 돌파할 지혜가 없다. 그럼에도 앞선 이야기를 다시 한번 적어 보려 했던 이유는 별 게 아니다. 뻔뻔하지도 용감하지도 못한 내가 무모함을 무릅쓸 만큼 잊히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빛이었다. -'사랑스러운 빛'에서, 184쪽

책 제목 ‘꼭대기의 수줍음’은 높이 자란 나무들이 맨 아래의 식물들까지 빛을 볼 수 있도록 가지와 가지 사이에 틈을 벌리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나무들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유계영 시인의 시선을 닮았다.

큰 나무 사이로 스민 빛 덕분에 작은 풀들이 자라날 수 있듯, 시인의 시선은 삶의 작은 기척들이 한 편의 글로 쓰일 때까지 오래 살핀다. <꼭대기의 수줍음>은 그렇게 완성된 글들의 첫 번째 화원이다.

246쪽. 정가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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