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어긋나는 것들이 있었다그 무질서한 것들의 무질서한최후를 나는 바라보면서풀이 자라지 않으면돌아오지 않는 것들의 계절과풀이 자라지 않아도돌아와야 하는 것들의 계절을 생각하곤 한다-「것들의 역사」에서시인은 ‘육체는 비명의 감옥인가요 기원인가요 아름다웠다던 소문으로 가득한 피부가 전속력으로 두꺼워졌다’라든가 ‘주어가 없는 슬픔이 마침내 기거할 육체를 찾아 타들어가는 밤이면 울음도 기억도 검붉은 꽃이 될 거라고, 술회한 뒤 ’칼로 저미면 피어나는 검붉은 기억을 나는 혀로 더듬었다 속지주의로도 속인주의로도 명명되지 않을 잿빛 슬픔은 다행히도 불행이 되고 혀가 잘려야 비로소 딱딱해진다던 발음에서 흘러나온 단어만이 환풍구로 빨려들어갔다’(낙관(落款))고 쓰고 있다.또 ‘검은 유령떼가 몰려들고 나병 같은 태양이 나를 잠들게 한다 검은 물이 들이치면 나도 네게 들이친다 한 잔의 독을 뿌리며 밤이 되는 사람아 저승의 승강장에 자기의 붉은 가죽을 내걸고 웃음 짓는 동공아 맹독이 묻은 입을 열어달라는 성문아 곡선의 모서리에서 비명의 고해성사가 울린다 가빠오는 숨이 병든 궁전을 채운다 나는 얕은 익명이 된다’(샬레)고 읊는다.그런가 하면 시 ‘Pierrot’에서는 ‘모든 사람의 꿈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전부보다 작을 수 있고 한 사람의 꿈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전부보다 클 수도 있다고 적힌 녹물로 쓴 편지를 전생의 내가 읽지 못했던 건 정원 밖의 내가 못을 바닥에 놓았던 것인지 인간의 얼굴을 한 개가 못을 흘리고 갔을 뿐인지 알 수 없어서이다 지상의 액자에 걸린 검붉은 반투명 커튼 너머로 두 꿈을 동시에 꾸면 개와 나는 거울을 사이에 두고 빗물 속을 걷는 한몸의 피에로가 되어 모호한 못을 입에 물고 반역처럼 망각처럼 서로의 정원을 쳐다본다’고 말한다.시 ‘검은 서사’를 통해서는 ‘여기엔 탈출구가 없고 유기된 인물과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웃는 태양만이 있다 슬픈 서사와 으깨진 원(圓)의 그믐이 있다 나의 호흡이 묻은 살은 먼지가 되어버렸고 머리카락에는 시취가 뼈마디 어딘가에 무늬를 남겼다 당신의 처음과 마지막을 모르는 짐승아 나는 슬퍼서 다시 울었다 잇몸만 남은 개가 동굴에 갇힌 짐승의 눈으로 제 안의 공(空)을 쳐다본다’는 비극적 세계관을 드러낸다.1984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유태 시인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018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가 있다.시인은 저자의 말에서 “쓰고 싶은 글은 써야 하는 이유가 자꾸만 없어지고, 묻어뒀거나 잊어버린 지 오래인 글은 제집을 잃어버렸던 고아 유령처럼 다시 나를 찾아온다.”며 “태어나지 않았으나 이미 죽어버린, 죽어버렸으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활자들.”이라고 강조한다.phaki5568@munhaknews.com©문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