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안 작성 이동순 시인, “전문성 인정받지 못한 고통과 모욕감 느껴"

(이동순 시인과 페이스북 글 일부 갈무리)

[문학뉴스=윤지현 기자] 올해 광복절을 맞아 유해 봉환이 이뤄지는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비문(碑文) 내용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앞서 20년에 걸쳐 민족서사시 <홍범도>(전5부작 10권)를 완성해 장군 묘소에 헌정한 바 있는 이동순 시인은 홍범도 장군의 비문과 관련해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非文 碑文’이라는 글을 올렸다.

오늘은 몹시 속상한 심정을 좀 올릴까 합니다. 이번 광복절에 맞추어 홍범도 장군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국내로 봉환된다는 감격의 소식을 올렸지요.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저에게 비문 요청을 해서 그날 최고의 정성을 다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나 홍범도, 고국강토에 돌아왔네. 저 멀리 바람찬 중앙아시아 빈들에 잠든 지 78년 만일세. 내 고국 땅에 두 무릎 꿇고 구부려 흙냄새 맡아보네. 가만히 입술도 대어보네. 고향 흙에 뜨거운 눈물 뚝뚝 떨어지네."

홍범도 장군의 귀국 심정을 직접화법으로 쓴 것입니 다. 그런데 저의 이 시안을 놓고 기념사업회 긴급운영 위원회가 제 것과 이사장 초안 문건 둘을 놓고 심사평 가를 했나봅니다. 갑론을박 끝에 저의 시안을 전원이 거부하고 이사장 작성 문안을 선택했습니다. 가재는 게편인 것이지요. 너무 참담한 모욕감을 느껴 이 조치 에 항의를 했더니 다음과 같은 어색한 절충안이 마련 되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머슴으로 포수로 살다가 만주 봉오동 과 청산리에서 독립전쟁을 이끌었네. 저 바람찬 중앙 아시아 빈들에 잠든 지 78년 만에 고국강토로 돌아왔 네. 이 땅에 두 무릎 꿇고 맡아보는 흙냄새여, 눈부신 통일로 가는 조국이여."

제 글은 중간의 두 문장뿐이고, 이사장 문장은 도입 부, 종결부 두 군데입니다. 운영위원회측 의견은 비 문이기 때문에 객관적 어법을 써야한다는 주장을 내 세웠습니다. 저는 홍범도 장군 직설화법이 더욱 강렬 하고 가슴에 젖어든다며 자꾸 설득을 했지요. 하지만 제 설득은 기어이 수용되지 않고 결국 객관적 어법을 썼다는, 문장이 아주 싱겁고 문맥의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졸렬한 비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동순 시인 페이스북)

이 글을 본 한 시민이 최근 국민신문고에 ‘난도질 당한 비문(碑文)’이라는 제목으로 민원을 제기하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그는 “시인 이동순 교수님의 페이스북에서 홍범도 장군 유해가 봉환되는 행사를 앞두고 최고의 정성을 다해서 쓴 비문이 난도질 당해서 너무나 참담한 모욕감으로 상심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국민신문고에 국가보훈처를 지정해 아래와 같이 민원을 냈다”고 밝혔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기념비 비문관련 민원 내용>

이번 광복절에 맞추어 홍범도 장군 유해가 카자흐스탄에서 국내로 봉환 되지요?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에서 결정한 비문이 아래와 같다고 들었는데 그 내용에 문제가 있어 다시 검토해주길 요청을 합니다.

"홍범도 장군은 머슴으로 포수로 살다가 만주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독립전쟁을 이끌었네. 저 바람찬 중앙 아시아 빈들에 잠든 지 78년 만에 고국강토로 돌아왔 네. 이 땅에 두 무릎 꿇고 맡아보는 흙냄새여, 눈부신 통일로 가는 조국이여."

여기서 '홍범도 장군은 머슴으로 포수로 살다가' 라는 표현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마당에 부적합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여년간 대서사시 <홍범도>를 쓰신 이동순 시인께서 쓰신 비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외에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드높인 공로를 생각해도 이동순 시인께서 쓰신 비문이 홍범도 장군의 기개를 드높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일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시인적 전문성을 전혀 인정 받지 못한 고통과 모욕감이 이동순 시인 뿐만 아니라 전체 문인들의 원성을 사고도 남는 참사가 될 수 있어서 보훈처 또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동순 시인은 이번 사안에 대해 “20여년 간의 홍범도 장군 연구와 창작의 전문성을 전혀 인정해주지 않은 것”이라며 “인문학적 상식도 갖추지 않은 운영위원회 멤버들이 제 시안을 마구 잘라버리고 처음과 끝부분에 이사장의 문장을 넣어서 본래 효과를 아주 파괴시켜버렸다.”고 성토했다.

또한“오늘 보훈처에 이 괴기적 문장을 완성본으로 제출했다고 한다.”며 “시인적 전문성을 전혀 인정 받지 못한 고통과 모욕감에 너무 상심이 되고 가슴이 아프다”고 심경을 전했다.

한편 이동순 시인은 경북 김천 출생으로 1973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시,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개밥풀>, <물의 노래>, <지금 그리운 사람은>, <독도의 푸른 밤> 등과 평론집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한국인의 세대별 문학의식>을 비롯해 민족서사시 <홍범도>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2torok@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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