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문용주의 생활명상1]

[註; 시인이자 명상가로 참살림수련원을 운영하는 문용주 원장의 생활명상을 연재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명상은 복잡한 현대생활의 청량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월 세 번째 목요일은 북한산 등반을 하는 날이다. 고등학교 동기들과 함께 독바위역에서 모여 그때마다 다른 등산로를 답습해가면서 산행을 즐긴다. 이번 6월은 향로봉을 거쳐 사모바위에 이르는 길을 택했다. 도중에 경사가 급한 암벽을 오르는 힘든 과정이 여러 번 있어 몸은 힘들었지만 기쁨은 컸다.

식사를 하면서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송충이 한 마리를 보았다. 쓰다 만 휴지로 가는 길을 가로 막으니 휴지 위에 올라타서 한참을 헤맨다. 내려놓으니 다시 땅바닥을 기어간다. 짓궂게 몇 번 반복하면서 과연 송충이는 지금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이 자기가 사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 돌아가는 속도는 무척 빠르다. 인터넷이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휴대폰이 일상화되면서 매일매일 달라져가는 세상을 실시간으로 본다. 1년 6개월이 넘어가는 코로나19가 기존의 생활을 잠시 유보시키기는 해도 휴대폰이 이를 대신해주듯 변화하는 속도는 조금도 늦추어지지 않고 있다. 집에서도 무엇이든 얼마든지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실시간으로 알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베트남 출장을 갔을 때 전할 말이 있으면 자전거를 타고 가서 먼 거리에 있는 친척에게 직접 전하는 광경을 보았다. 그래서인지 수많은 자전거가 복잡한 거리를 교차하면서 어지럽게 오가는 것이 서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자전거, 오토바이 심지어 자동차 역할이 전화기를 거쳐 이제는 휴대폰의 손가락이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20년 만의 변화가 이렇게 크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그것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그 변화의 본질은 무엇이며 사람들은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매일매일의 생활이 모여 일생이란 삶을 이룬다. 변화가 있으면 누구나 그 속도에 적응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모두 송충이의 걸음걸이처럼 세상에 맞추어 살아가려는 애타는 몸짓들이다. 그 속에는 고뇌와 번민, 고통과 질병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엄연한 진실을 피할 수 없다.

원하는 삶 대신 원하지 않는 불행이 우리 생활을 바꾸며 끼어드니 어쩔 수 없이 그에 추종하는 삶이 되어 있다. 삶을 편안한 일상으로 채우는 대신 초조한 불행으로 허덕이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그러한 삶이 당연하고 피할 수 없는 듯 수용하면서 삶에 무슨 왕도가 있겠는가 하고 자조 반, 포기 반으로 대충대충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그러하니 나도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살게 된다. 과연 그렇게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최선의 삶인가?

명상은 세상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가는 속도를 나에게, 내 몸에 맞추는 것이다. 삶의 속도를 늦추면 나와 내 몸이 바르게 회복되면서 생활의 질은 현저히 높아진다. 그래서 내 마음과 정신을 되찾아 내가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결과적으로 늦춘 속도만큼 삶의 질이 알차고 바람직하게 바뀌는 것이다.

속도가 만드는 잘못된 삶을 늦추고 바로잡으면 고뇌는 즐거움으로, 번뇌는 기쁨으로, 고통은 행복으로 바뀌면서 건강하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평온하고 정신이 맑으면 하고자 하는 일도 쉽게 잘 된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이루고자 하는 삶을 살면 가족이 즐거워하고 친지가 기뻐한다. 그 여파는 사회와 국가에 미치고 또 세계로 파급된다.

세상이 사람을 만들면 세상은 돌아가지만, 그 속에 사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반대로 사람이 세상을 만들면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면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된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명상이란 작은 행위가 사람다운 세상으로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셈이다.

오늘도 북한산에서는 그렇게 헤매는 수많은 송충이를 볼 수 있다.

문용주

시인, 명상가로 시산문학작가회 회장과 참살림수련원 원장을 맡고 있다. GS그룹 임원을 역임했으며, 한국코치협회 평생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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