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뉴스/ 글⋅사진=전선정 기자] 3월 첫 주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정상에서 만난 탁 트인 사방 전경은 지난 2월 말 설악산 대청봉 정상에서 한 줌의 시야도 펼쳐지지 않았던 막막했던 아쉬움을 만회할 수 있었다.

정상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고 겨울 분위기도 남아 있지만, 공기만큼은 봄기운이 완연해서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기운을 몸 전체로 받고, 느낄 수 있었다.

지리산은 백두산의 맥이 반도를 타고 내려왔다는 뜻에서 두류산(頭流山)이라고 불렸고,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높은 스님의 처서를 가리키는 ‘방장’을 빌어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했다.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져 왔으며,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고 해서 지리산(智異山)으로 불려 왔다.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공원에 지정된 곳으로 경남, 전남, 전북 등 3개 도, 5개 시·군, 15개 읍·면에 걸쳐있고, 여의도 면적의 20배 정도로 20개 국립공원 가운데 가장 넓다.

1915m 천왕봉까지 오르는 코스 중 가장 쉬운 방법으로 중산리 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법계사 셔틀버스( 1인당 2천 원)를 타고 경상남도 환경교육원 입구를 들머리로 해서 등산을 시작했다. 3.2km 거리를 10분 정도 버스 탑승을 했고, 고도가 912m였으니 그나마 도움받을 수 있는 만큼 체력을 아낄 수 있었다.

까치박달, 산벚나무, 참회나무 등이 아직 새싹도 피우진 않았지만, 눈 녹은 물들이 흘러내려 우렁찬 함성처럼 들리는 걸 보니 점차 봄이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탐방로 입구에서 2.7km 지점에 있는 로타리대피소는 코로나19로 인해 숙박은 허용되지 않고 매점만 운영 중이다.

휴식을 취하며 둘러보니 지리산에 자생하는 식물 사진과 설명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날개하늘나리, 숫잔대, 복주머니란, 쥐오줌풀, 산오이풀, 물레나물, 노루오줌 등이었는데, 아직은 야생 식물을 보기엔 이른 감이 있었다.

잠시 등산 장비를 재정비하고, 출발하니 법계사 일주문이 보였다. 법계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높은 곳(1450m)에 있으며,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가 창건했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왜군에 의해 불탔으며, 1405년 선사 정심이 중창한 뒤 수도처로 널리 알려졌으나 1908년 일본군에 의해 다시 불탄 이후 방치돼 있다가 1981년 법당과 산신각·칠성각 등이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보물 제473호 법계사 삼층석탑이 있으며,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향해 예배드리는 적멸보궁 중 하나다.

법계사를 지나면 ‘하늘을 여는 문’이라는 뜻의 개천문을 지나는데, 현재는 개선문으로 알려져 있다.

가파른 경사에다 돌산이어서 거친 숨을 몰아쉴 만큼 힘들었지만, 등반 도중 보이는 첩첩산중 산골과 운해 사이로 솟아오른 봉우리를 보면 어느새 기운이 나고 새 힘이 불끈 솟았다.

쉼터에 세워진 안내판에 “조금 늦어도 괜찮아요, 남보다 더 많이 볼 수 있거든요” 라고 쓰인 귀절에 자신감을 얻어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천왕봉 정상석 뒤편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정상 아래에는 큰 바위 틈새에서 샘물이 솟아 나오는 천왕샘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맞닿은 산봉우리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거대한 산맥을 이루고, 그 아래로 아늑한 마을들이 형성되어 평화로워 보였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건 1시간 정도가 덜 소요되어 여유있게 5시 셔틀버스를 타고 중산리탐방센터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일제에 의해 사찰이 두 번이나 불타고, 6·25전쟁 중 빨치산과 관련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의 피를 흘린 쓰라린 아픔이 서려 있지만, 자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범하게 인간 세상을 포용하고 끌어안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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