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일상 3] 김대일

(부산 해운대의 달맞이언덕 길에 서있는 '추리문학관' 이정표)

어처구니가 없게도 소설 『만다라』와 『여명의 눈동자』를 한 작가의 작품으로 착각한 적이 있었다. 이름이 비슷해 그런 모양인데 인생의 진리를 찾아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불교소설을 썼다가(김성동, 金聖東) 한국 추리소설의 중시조(김성종, 金聖鍾)로 전향하는 비상한 능력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어쩔거나, 이 무지의 소치를!

김성종은 1941년생으로 중국 산둥성 지난 출생이다.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고, 추리소설이 주 장르이며 대표작으로 『최후의 증인』, 『여명의 눈동자』, 『제5열』, 『국제 열차 살인 사건』 등이 있다.

아무튼 찻길을 따라 달맞이언덕을 털레털레 걷다 보면 <추리문학관>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누군가는 달맞이언덕을 한국의 몽마르트르언덕이라고 부르는데, 너무 과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타이로 신혼여행 갔을 때 외에는 해외를 나간 적이 전혀 없어서 직접 가서 본 사람 말만 듣고 표현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몽마르트르라고 하면 진정한 자유를 꿈꾸던 예술가들의 고향으로 낭만이 가득한 장소이면서 거리를 메운 화가들과 감성적인 가게들, 느낌 있는 프랑스 전통 레스토랑들로 파리에서 가장 로맨틱한 곳이 아닌가.

그런 곳을 ‘갤러리&카페’란 미심쩍은 표현을 써서 이곳이 화랑인지 카페인지 분간이 안 되는 정체불명의 장소들이 드문드문 숨어 있을 뿐 온통 대형 커피체인점 아니면 음식점들로 점령된 유흥지와 비교하는 건 당치도 않다. 물론 창작과 예술의 장소라는 몽마르트르도 밤이 되면 환락가로 변한다던데 이를테면 ‘밤에만 몽마르트르를 닮은 언덕’으로 칭하면 어떨는지.

(해운대 달맞이언덕에 위치한 '추리문학관'의 조각 현판)

<추리문학관>은 달맞이언덕이 먹고 마시는 생리적 욕구를 분출하는 인간만 모이는 곳은 아니라는 걸 항변하는 거의 유일하게 변변한 장소가 아닐까 나 혼자 생각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통영의 <청마문학관>은 입장료가 1,500원으로 저렴하고 <박경리 기념관>은 아예 무료지만 <추리문학관>은 5,000원으로 싼 편이 아니다.

김성종 작가 사재로 세운 개인 문학관이고 사설 운영이라는 재정적 한계를 감안한다면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관광차 달맞이언덕을 누비다 잠시 들르는 뜨내기 유람객들이야 일정의 한때를 기념할 비용으로 별로 아깝지 않을 그 돈이, 그러나 코앞에 살면서 늘 문화적 갈증에 허덕이는 자가 뻔질나게 드나들기에는 큰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문학 명소가 지척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입맛만 내내 다실 따름이다. 달리 그림의 떡이겠는가. (가격을 할인한 월간, 연간 회원권이라는 게 있는지는 확인을 못 했다.)

김성종은 해운대를 배경으로 추리작가 ‘노준기’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등장시킨 연작소설집 2권을 2015년에 냈는데, 『달맞이언덕의 안개』, 『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가 그것이다. 셜록 홈즈, 아르센 뤼팽, 콜롬보, 김전일과 같이 압도적인 원맨쇼를 펼치는 인물일지, 내 집 마당 같은 해운대와 달맞이언덕이라는 무대에서 어떤 추리적 상상력이 펼쳐질지가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추리문학관> 대신 거리로는 몇 곱절이나 먼 해운대도서관엘 가서 그 책들을 빌렸다.

추리소설의 중시조 김성종과 추리문학관을 내내 떠올리며 금새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셜록 홈즈의 이미지 패널이 인상적인 추리문학관 입구의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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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일 수필가

부산 출신. 소소하지만 심상찮은 일상이라면 기를 쓰고 기록하려는 자. 그래서 『일상(日常)』이라는 책까지 낸 자. 연재를 준비하면서 부산이 의외로 문예의 보고라는 데 화들짝 놀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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