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레미제라블>, 7~1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장발장 역·예술감독 맡은 윤여성 “새로운 장발장 도전”

[문학뉴스=이성봉 기자]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지정한 ‘2020 연극의해’다.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팬데믹’ 사태가 벌어짐에 따라 지금까지 연극다운 연극이 제대로 공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던 공연계가 8월이 되면서 서서히 활기를 찾고 있다. 국공립 공연장과 예술단체의 제작 공연이 7월말부터 재개되고, 진행 무산을 우려하던 각종 공연이 관객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8월에 큰 기대 속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연극<레 미제라블>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2020 연극의해’를 기념할 만한 공연으로 선정한 것이다. 2011년 초연 이후 10년간 이 작품과 함께 한 예술감독이자 이번 무대에서 장발장을 맡은 윤여성 배우를 지난달 28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연극 <레미제라블>에서 예술감독과 장발장 역을 맡은 윤여성 배우. 사진=이성봉 기자)

•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무척 힘들었지요.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나요?

윤여성(이하, ‘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도 공연을 했어요.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인데, 지난 7월초 서대문에서 <나는 아니다>라는 작품을 올렸어요. 공연하느라 힘들었지만 단 하루 공연에 가까운 분들이 꽤 많이 와 주어 힘이 되었습니다.

• 이번 작품은 2011년부터 네 번에 걸쳐 무대화했는데 윤 감독은 지난 공연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요?

윤: 전에는 예술감독만 했어요. 학생들 단체 공연에서는 한 번 해설을 했고요. 그때 공연이 세 시간 반이었는데, 학생들 상대 특별 공연은 1시간 남짓으로 잘라야 해서 작품 중간 중간을 해설로 대신했어요. 배우로는 이번 무대가 처음이고, 장발장 배역에도 첫 도전입니다. 워낙 대작의 주인공이고 많은 사람의 기대치가 있어 큰 부담을 느끼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장발장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보통 장발장 하면, 덩치가 크고 우람하고 우직한,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이번에 내가 그려낼 인물은 소설에도 ‘작은 체구에 다부진 몸매’라고 표현되어 있듯이 지적인 장발장을 한 번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우직한 장발장에 가려진 인간적이고 아주 섬세한 장발장을 새롭게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 해서 그런 캐릭터를 잡아내고 있어요.

• 연극계에서 이번 <레미제라블>에 기대하는 건 뭘까요?

윤: 연극계나 대학로에서는 확실히 이런 대작에 거는 기대가 있어요. 물론 대학로뿐 아니라 전국에서 이런 대작은 아마 올해 처음이라고 여겨집니다. ‘연극의해’인데도 처음이지 않나 싶네요. 이번에는 원로배우 오현경 선생님을 비롯해 8세 아역배우까지 약 70여 명이 출연합니다.

[이번 공연에는 1400여 명이 참여한 오디션에서 선발된 배우와 오현경, 문영수, 박웅, 임동진 등 원로 연기자 등 70여 명이 배우로 참여한다. 사진=(유)레미제라블 제공]

• <레미제라블>을 소설로도 읽고 뮤지컬이나 영화로도 많이 봤습니다. 이번 연극은 뮤지컬과 영화 작품에 견준다면 어떤 점이 다를까요?

윤: 먼저 말하고 싶은 점은 소설 <레미제라블>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도 연극을 보면 소설을 읽은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이번 제작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성구 연출이 표현주의 형식의 무대를 만들었어요. 그동안 공연된 작품에서는 리얼리즘 형식의 연극을 했는데, 이번에는 표현주의 형식과 리얼리즘 연극을 가미한 느낌입니다. 18~19세기 유럽의 명화를 잘 펼쳐놓았다고 하겠습니다.

• 연극 <레미제라블>이 다섯 시즌 공연하는 동안 박장열 연출이 맡았는데, 이번에는 이성구 연출로 바뀌었네요.

윤: 2011년부터 지난 공연까지 연출은 50대 연기자 그룹과 함께했기 때문에 사실주의 연기 기반의 연극을 했고, 무대도 그랬어요. 이번에 공연을 결정하고 박장열 연출한테 전화를 하니 경남도립예술단을 맡아 연출 작업을 할 처지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초연 당시부터 조연출 겸 무대감독을 했던 이성구 연출이 맡게 됐지요. 이성구 연출은 지난번 작품과 관계없이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어 보겠다는 각오로 무대미술과 음악도 완전히 바꿨고, 의상과 분장도 새롭게 했어요. 그는 학교에서도 표현주의 연극을 많이 배웠고, 그런 점이 반영되어 이번 작품은 젊어졌고 신선해졌어요. 이전 관객들도 새 작품이라고 느낄 정도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윤여성은 이번 무대에서 그동안의 장발장과는 다른 인물을 창조하려 한다. 사진=(유)레미제라블 제공]

• 이번에 예술감독과 장발장 역이라는 큰 두 역할을 같이 맡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요?

윤:40년 전부터 이런 프로덕션을 여럿 운영해 봤어요. 극단이나 극장도 35년 정도 운영했고요. 그래서 운영은 딱히 어렵지 않아요. 배우로서는 이번에 장발장을 하면서 상대배우와 내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좀 당황스럽기는 합니다. 다양한 장발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조금 어렵지만 잘 맞추고 있습니다. 제작에서도 이종열 대표와 40년간 호흡을 맞춰온 사이라 서로 안 봐도 잘 진행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좋은 차세대 배우를 발굴하는 것이 선배 연기자의 의무라고 생각하기에 그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 이번 장발장 역은 더블 캐스팅인데 어떤지요?

윤: 개인적으로 더블 캐스팅 공연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싫어하기도 하고요. 언젠가 한번 했더니 무척 힘들었어요. 연극에서는 여러 배우와 합을 맞추는 게 중요한데, 요즘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더블 캐스팅에다 작품도 동시에 두, 세 개씩 하는 것을 보면 한 작품에 감정을 몰입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한 작품에서 배우에 따라 다른 장발장을 그려내는 것도 매력적이겠다고 생각해 나만의 인물을 창조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번 <레미제라블> 공연에서 관객 동원 등 성과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요?

윤:2011년에 처음 시작할 때도 너무 불안했어요 그래서 이른바 스타를 쓰자는 말도 잠시 있었지만 연극인들끼리 해보자고 했어요. 티켓 가격도 당시 대학로 수준인 3만 원선이 아니라 7만 원으로 했어요. 그런데 성공이었어요. 공연을 정산 결과 일부 배우들에게 출연료를 주고 제작비도 정리하니 3천만 원이 남았어요.협회 기금 1500만 원 적립도 하고, 아주 작은 돈을 조금씩 나누기도 했지요. 어쨌든 대작 연극을 올린 뒤 작지만 수익을 거뒀다는 게 흐뭇했지요. 이번에 예술의전당 측도 이런 공연을 매년 한 번씩 한 10년 하자고 이야기하네요.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이처럼 좋은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백 명이 넘는 배우와 스태프들과 일일이 계약하고, 밥 먹고, 회식하고, 출연료 주고 정말 힘들어요. 연극인들에게는 그래도 아직 동지애가 있어요. 이렇게 백 명이상의 배우와 스태프가 작품 하나를 가지고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입니다.

[질로르망으로 참여하는 원로배우 오현경(가운데)과 윤여성(왼쪽), 가수 티아라 출신으로 연기자로 변신한 함은정(코제트 역)이 방송사와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이성봉 기자]

• <레미제라블>은 소설로도 엄청난 분량이다. 이번 작품에서 특히 어떤 점들을 강조하는지요?

윤: <레미제라블>에는 다양한 메시지가 있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지요. 나는 장발장의 마지막 대사인 “너희들은 언제까지나 사랑해라. 사랑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사랑과 용서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쪽에 초점을 맞췄지요. 사랑이라는 게, 한 번 잘못을 하면, 평생 그 사람이 죄를 뉘우치고, 정말 잘 살아도 세상은 안 받아준다는 것, 끝까지 안 받아준다는, 그런 무서운 결론이 나 있어요. 그런데 현실도 정말 그렇더라고요. 장발장 경우에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끝까지 뉘우치고 자기가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러면서 마지막에 ‘꿈같은 인생이야’ 하면서 끝나는데, 전반적인 건 몰라도, 장발장 입장에서는 허무하다는 느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는데, 내가 내 삶을 산 게 아니라 다른 삶을 산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결말이 좀 씁쓸하게 지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 올해가 ‘연극의해’라는데, 요즘 연극다운 연극이 없는데 아쉬운 점은 없는지요?

윤: 아쉬운 점이 너무 많지요. ‘연극의해’라면 사실 연극 작품이 여럿 올라가야 하는데, 정작 연극은 안 올라가고 세미나나 전시회 등만 올라간다고 합니다. 이번 <레미제라블>이 ‘연극의해’를 시작하는 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연극계도 좀 활기차게 많이 활동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힘들겠지만 지원을 좀 해줬으면 하고 바랍니다. 올해 ‘연극의해’를 그냥 넘기기가 너무 아깝네요. 벌써 반 이상이 지났습니다. 개인적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반 년 더 연장해서 활동을 했으면 합니다. (웃음) 예술인복지를 많이 이야기하곤 하는데 가장 좋은 복지가 이렇게 공연을 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이번 한 공연으로 수백 명이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연극은 더 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다 비대면이라 웬만하면 안 가고 안 만나지요. 많은 걸 온라인으로 하고 집안에서 지내다 보면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좋은 배우들이 좋은 작품을 좋은 극장에서 공연하면, 뭔가 사람 냄새를 맡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요. 지금이 더 기회라는 생각을 합니다.

sblee@munhaknews.com

정리 도움=강은영 인턴 기자

©문학뉴스/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