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뉴스=이석번 기자]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1914~1980)의 공쿠르상 수상작으로 국내에서는 주인공 이름은 딴 노래 ‘모모’로 널리 알려진 소설 <자기 앞의 생>이 연극으로 무대에 오른다.

<자기 앞의 생>은 국립극단(예술감독 이성열)이 올해 첫 작품으로 오는 22일부터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이 작품은 프랑스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로맹 가리(Romain Gary, 필명 에밀 아자르 Émile Ajar)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만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출연 배우인 양희경(오른쪽), 이수미(왼쪽), 오정택(가운데). 사진=국립극단 제공]

한 편의 연극 같은 로맹 가리의 생과 사...프랑스 뒤흔들었다

로맹 가리는 생을 마감하기 몇 달 전 캐나다의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나는 내가 삶을 선택했다기보다 삶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 뒤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기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데다 유서를 통해 프랑스 문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1975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자기 앞의 생>의 저자 에밀 아자르가 사실 자신의 필명이었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공쿠르상은 한 작가가 중복 수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로맹 가리는 이미 1956년 소설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수상한 바 있었다. 따라서 <자기 앞의 생>은 자신의 본명으로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는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프랑스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떨쳤다. 미국에서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하는 등 소설가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걸었다. 하지만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론가들의 극심한 비판을 받아 심적 고통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자기 앞의 생>이 발표되자 신예 에밀 아자르와 비교되며 더 이상 의미있는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소설가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얄궂은 상황을 암시하듯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서 결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그는 죽음을 통해 편견에 갇힌 사람들에게 통쾌한 일침을 날렸고 공쿠르상 중복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인생 소설’로 꼽히는 그의 문제작 <자기 앞의 생>은 희곡으로 각색되어 또 한 번 평단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연극 <자기 앞의 생>은 프랑스 작가 겸 배우인 자비에 제이야르의 각색으로 2007년 초연됐다. 그 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연극상인 몰리에르상에서 최고작품상, 최고각색상, 최우수연기상 등을 석권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국내에는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된다.

파리 슬럼가의 한 아파트를 배경으로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랍계 소년 모모와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유대인 보모 로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인종, 종교, 세대 등 사회적 장벽을 뛰어넘어 인간애를 잃어가는 현대 사회에 깊은 메시지를 던진다.

(<자기 앞의 생> 포스터. 사진=국립극단 제공)

이번 공연에는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이 모였다. 유대인 보모 로자 역은 배우 양희경과 국립극단 시즌단원 이수미가 함께 맡는다. 양희경은 1985년 연극 <한씨연대기>로 데뷔한 이래 드라마와 영화는 물론 연극 무대에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또한 이수미는 지난해 국립극단의 <운명>, <텍사스 고모> 등에 출연함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으며, 제55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그에 대해 “희곡의 언어가 배우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통해 어떻게 입체적으로 창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모모를 연기하는 오정택은 국립극단 청소년극 <노란 달>, <타조 소년들> 등에 출연해 청소년 캐릭터를 다뤄왔으며, 이번에도 조숙하지만 순수한 마음을 지닌 모모를 본인만의 색깔로 표현해낼 예정이다. 연출은 <신의 아그네스>, <아내들의 외출> 등 여성 중심의 서사를 꾸준히 소개해온 박혜선이 맡는다.

3월 23일까지 공연되며 티켓 가격은 2만~ 5만 원, 예매 및 문의 국립극단(www.ntck.or.kr 1644-2003).

[로맹 가리(Romain Gary 1914~1980 필명 에밀 아자르). 사진=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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