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뉴스=남미리 기자] 박세현 시인은 이번에 낸 시집 『여긴 어딥니까?』(세상의 모든 시집 펴냄, 값 1만 원)에 실은 뒷말에서 “시인은 무엇이 시인가를 재정의하는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는 주어져 있는 무엇이 아니라 무엇이 시인가를 강박적으로 질문하는 순간이 시이고 그것을 받아 적는 것이 시가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따라서 시인은 시작(詩作)에 대해 기존 시론과 시창작법 등을 받아들이면서도 부정해 나가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쓴다. 사명감으로 쓰는 것은 아니다. 그냥 쓴다. 쓰는 데 어떤 이론이 없다.” 시인의 진솔한 고백이 공감 있게 다가온다.

그의 시집을 들여다보자. 보통의 시집과는 다소 형식이 다르다. 차례에 올라 있는 ‘시인의 말’ 페이지에는 제목만 덩그러니 실려 있다.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다고 할까. 또 흔히 책 뒤에 붙는 문학평론가의 해설도 없다. 대신 시인이 직접 ‘시집 뒷말’을 써서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그에 대해 홍일표 시인은 “박세현은 시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고, 거창한 시의 향방에 관심 두지 않고, 시의 육체로 동서남북 자유자재하는 사람이다. 변방에서 더욱 예리하게 빛나는 시선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것들을 정확히 읽어내고 발언한다”라고 평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여기가 어디인지’를,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항상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는 곳은 나도 모르는 곳/ 아무도 모르는 곳/ 세상에 있을 리 없는 곳에서 실종되자.//....내가 사라지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 먼저, 연락해봐야 하나 생각 중.”(<리스본행 야간열차 줄거리> 부분)

박 시인은 1983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25년간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했고, 시집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남자』 『치악산』 『정선아리랑』 『길찾기』 『꿈꾸지 않는 자의 행복』 등을 펴냈다.

<빗소리듣기모임>

어느 하루 눈뜨고 생각해보니 삶이 한참 밋밋해졌다. 이래서는 안 되지 싶은 마음 가닥을 붙잡고 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하여 손수 빗소리듣기모임을 일으켜 세우고 혼자 뚝딱뚝딱 셀프로 종신대표에 취임했다.

현재 정회원은 나 1인뿐이지만

회원을 더 모집할지는 미정이다

하는 일이야 뭐 있겠는가

비 오는 날

어느 구석에 모여 어느 빗소리에

오롯하면 되는 것이다

누가 들으며 웃을 일이다

드디어 미쳤군! 그러겠지들

비 오는 날 생각나거든

술잔값이나 들고 오시면 된다

당신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나의 동지들

이 모임은 바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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