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영 시인 신작시집『꽃들의 이별법』출간

[문학뉴스=이여동 기자] 문정영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꽃들의 이별법』을 펴냈다. 이번 시집에서는 이별을 노래한 시가 많다. 나이가 들면 사람이 둥글둥글해지면서도 깊어지는 것인가. 그는 이별을 노래하면서도 그 슬픔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슬픔은 억누른 채 대상과 하나가 되어 오래오래 지켜보는 식으로 이별을 노래한다.

('꽃들의 이별법' 표지)

문정영 역시 '시인의 말'에서 "꽃의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꼭짓점 이별의 각이 없다. 스스러 그러하게 꽃을 바라본다. 듣고 보아도 또렷하여 고요하기만을 바라본다"고 하여 긍정과 수용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네 앞에서 꽃잎 위 물방울처럼 있는다

새벽이 지나간 자리가 빨갛다

작은 무게를 버티는 것이 꽃들의 이별법

한 발로 나를 짚지 못하고 너를 짚으면 계절 하나 건너기 어렵다

너를 다 건넜다고 생각했는데, 버티기가 쉽지 않다

한 발 내밀 때마다 하늘이 수없이 파랬다 검어진다

꽃술 내려놓고 그 향기 따라 건넜다, 어두웠다

수평으로 걷지 못한 날들이

물가의 신발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해가 점점 부풀어 오르면 벌들은 일찍 떠난다

네 숨소리가 꽃잎 떨리듯

높아졌다 가라앉는 것을 내가 보고 있다

-<꽃들의 이별법> 전문

시집 해설을 쓴 강경희 문학평론가는 이 시를 놓고 “꽃은 피었다 진다. 눈부시게 피고 아낌없이 진다. 이별에 대한 아쉬움도 두려움도 남기지 않는다. 그 장엄한 풍경을 목도하는 ‘나’는 스스로 ‘높아졌다 가라앉는’ 법을 배운다. 자연의 가르침이다. ‘수없이 파랬다 검어’지는 시간의 통증을 새기고, ‘꽃잎 위 물방울’의 무게로 간신히, 간절히, 또 유유히 존재하는 것이 인생이다. 개화(開花)의 찬란함보다 ‘향기 따라’ 떠나는 이별을 보려는 자, ‘한 발로’ ‘계절 하나’를 건너는 ‘꽃잎’의 떨림은 배우는 자, 소멸하는 빛의 시간을 사랑하려는 자가 문정영”이라고 평한다.

이번 시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고향을 소재로 한 시들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남다른 것은 고향이 수몰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자신이 뛰어놀던 곳, 자신을 늘 넉넉히 품어준 고향의 강과 산과 들판을 더는 볼 수 없기에 그 아름다운 기억들을 원고지 위에 풀어놓는다.

"한 여름을 펴놓은 평상에서 당신의 가슴을 나누어, 저녁으로 쓰곤 하였는데, 이제 어느 몸에 있는지, 나눌 수 있는 것이 점점 사라지고, 눈빛마저 마주칠 수 없을 때, ‘장흥’하고 부르면 그 시절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때, 눈물은 눈물이 아니어서, 손으로 듣고 입으로 내는 소리 들리지 않아요

당신은 당신이 아니고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같아요

깊어진다 해도, 더는 푸를 수 없는 수위에서, 당신을 장흥이라 불러 봅니다

-<장흥> 중에서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은 더 이상 실재하지 않는다. 고향이 안겨준 시간과 공간들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이제 ‘눈빛마저 마주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화자는 ‘장흥’하고 부르면 다시 ‘그 시절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갖는다. 수몰된 고향을 생각하며 ‘당신을 장흥이라 불러’본다는 화자의 정서적 토로가 가슴을 흔드는 시다.

(문정영 시인)

문정영 시인은 전남 장흥에서 출생하여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했다.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뒤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낯선 금요일』 『잉크』 『그만큼』 등을 출간했다. 현재 계간 『시산맥』 발행인, 윤동주 「서시문학상」 대표를 맡고 있다.

ydlee@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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