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뉴스=이여동 기자] TV, 라디오 등 지상파방송 PD와 독립 PD들의 조직인 한국PD연합회(회장 류지열)의 1987년 창립 이래 30년 역사를 다룬 <6월항쟁에서 촛불혁명으로 – 한국PD연합회 30년, 방송민주화의 기록>이 나왔다. 지난 2008년 1월에 <PD연합회 20년사(1987-2007)>가 발간된 지 10년 만이다.

<6월항쟁에서 촛불혁명으로.... (이하 ‘30년사’)>는 1987년에 창립된 한국PD연합회의 30년 통사(通史)를 다루고 있는데, 그 출발점은 1987년의 6월항쟁이다. 그러나 이번 <30년사>는 영화 <1987>처럼 그때의 상황을 회고하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20년사 이후의 시기, 즉 2007년에서 2017년에 이르는 '이명박근혜' 정권하 9년 동안 KBS, MBC 등 공영방송을 필두로 한 우리나라 방송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서술하고, 이 과정에서 지상파방송 PD들이 겪은 수난과 저항을 주목하고 있다.

< 20년사>에 이어 <30년사>를 집필한 MBC 정길화 PD를 만나 집필과 발간에 얽힌 얘기를 들어본다. 정길화 PD는 MBC 시사교양PD로서 30여 년간 '세상사는 이야기', '인간시대', 'PD수첩, 이제는 말할 수 있다', 'W' 등의 교양프로그램을 연출했다. <PD수첩> 제작 당시 신문개혁 문제를 다루어 한국기자상 특별상을, 북한 식량난을 두만강 접경지대에서 현지르포해 통일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제작 시에는 친일파 3부작으로 임종국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제12대 PD연합회장을 역임했고(1998~1999년), PD저널의 전신인 PD연합회보 최장기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PD연합회의 <30년사> 발간을 축하한다. 방송사적으로도 중요한 시기에 나온 책 같다. PD연합회는 어떤 단체인가. 또 이 책의 발간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PD연합회는 독립 PD를 포함해 3천여 지상파방송 PD들의 구심체다. 언론의 한 중추로서 방송콘텐츠의 전문가를 자임하는 PD들의 단체로 1987년 9월 5일에 창립해 오늘에 이르렀다. 또한 PD연합회는 직능단체이자 언론운동단체다. 현장 제작자 중심의 관점에서 방송제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다. 10년마다 통사(通史)를 발간함으로써 역사를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오늘의 시점에서 나아갈 미래를 점검하고 조준한다. 지난 2008년에 20년사(1987-2007)를 발간했고, 10년을 더한 시점에서 30년사(1987-2017)가 나온 것이다. 이번 30년사는 한 세대(generation)가 지나는 시점에서 PD연합회의 궤적을 더듬어보면서 성찰과 전망을 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번 책을 쓰면서 어디에 주안점을 뒀는가. 10년 전에 나온 <20년사>와 차별되는 대목이 있다면 어디인가?

<30년사>는 기본적으로 운동단체인 PD연합회의 활동사다. “그 시대에 우리 사회는 어떠했는가? 이때 방송은 무엇을 했는가? 그러할 때 방송 PD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PD연합회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일련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통사로서 각 집행부 순으로 편년체 기술을 기본으로 하고, 당해년도 주요 이슈와 역점 사업을 내용별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10년 전에 20년사 집필 때는 20년(1987-2007)을 4년씩 5단계로 나누어 창립기, 진흥기, 발전기, 전환기, 견인기로 구성한 바 있다. 이는 연합회가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 정리한 것으로 다분히 자족적(自足的)이다. 그런데 2008년 이후 우리 사회는 9년간의 '이명박근혜' 시기를 겪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무시로 벌어졌다. 사악하고 교활한 정권, 무능과 오만으로 얼룩진 불통의 정권이 덮쳐 왔다. 이명박근혜 시대는 그 앞 20년을 재평가하게 만들었다. 결국 30년사는 다시 쓰여져야만 했다. 추가된 10년은 반성과 회한의 시간이다."

-<30년사>가 하나의 역사서라고 본다면 시대 구분이나 관점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기존의 미디어사나 방송사(放送史)도 있을 텐데 이번에는 어떻게 접근했는가?

"거칠게 돌아보면 우리 방송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를 포함하면 1927년 이래 90년이다. 광복 이후 1947년 HLKA 호출부호를 사용한 때부터 따지면 70년의 역사에 해당하고, 6월항쟁 이후 이른바 1987년 체제에서 방송인들이 자율성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 것으로 치면 30년으로, 이는 PD연합회의 역사와 일치한다. 방송 90년사 중 앞의 60년은 맹아기(萌芽期)의 방송과 권위주의 정권하 순치(馴致)의 역사다. 따라서 1987년에서 2017년까지의 PD연합회 30년사를 돌아보는 것은 성년 한국 방송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번 30년사에서는 1987년에서 2017년까지 30년을 10년 단위로 해서 3장으로 나누었다. 10년은 2명의 대통령 임기로 대별할 수 있다.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10년간 우리 방송의 내용과 성격(텍스트)은 해당 시기의 정치적 상황(콘텍스트)를 적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른바 ‘10년 주기설’이 방송계에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각 장의 제목은 ‘창립과 정비’, ‘활동과 발전’, ‘시련과 촛불’로 구분했다."

-통사의 전체 제목은 ‘6월항쟁에서 촛불혁명까지 - 한국PD연합회 30년, 방송민주화의 기록’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부인할 수 없이 PD연합회는 ‘1987 시대’의 산물이다. 1987년 1월 박종철, 6월 이한열 열사의 희생으로 6월항쟁이 분출했다. 이렇게 학생과 시민의 희생과 투쟁으로 민주화의 공간이 열리면서 비로소 PD연합회도 출범할 수 있었다. 연합회의 출발점은 당연히 6월항쟁이다. 오늘의 방송과 방송인들은 6월항쟁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영화 <1987>을 보면 알 수 있듯 당시에 제도권 방송은 언론이 아니었고, 체제의 일부분이었다. 6월항쟁을 제목에 명토박은 것은 역사적인 부채감을 재삼 환기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2016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분노로 촛불이 타올랐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 국정농단과 언론장악으로 방송계는 참담한 추락이 있었다. 공영방송사는 유린되었고 해직방송인들의 대안매체와 독립영화가 기존 언론을 대체했다. 그러던 중 정권의 모순이 폭발했고, 1700만 촛불이 점화되었다. 비로소 야만과 불통의 시대가 지나고, 이제 부패와 비리의 사슬을 부수기 위한 도정에 들어섰다. ‘촛불혁명’을 명시하는 것 역시 그러한 인식을 반영하면서 <PD연합회 30년사>가 한 세대에 걸친 장구한 방송민주화의 기록임을 말하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6월항쟁 때 방송인들은 민주화의 열차에 무임승차했다. 이후 20년간은 PD, 기자 등 현장 방송인들의 부단한 투쟁과 실천으로 일정 부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 기여한 바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명박근혜 9년 동안은 타고 있던 열차에서 추방되거나 도태되었다. 민주주의와 언론과 표현의 자유, 평화와 민생의 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열차는 정체, 후퇴하거나 엉뚱한 길로 폭주했다. 그 나락에서 구해준 것이 촛불이었다. 지난 30년을 두 단어로 압축한다면 ‘6월항쟁’과 ‘촛불혁명’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항쟁은 진행형이며 혁명은 미완(未完)이다. 이는 동시에 방송인, PD들의 치열한 반성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필진 구성이나 30년사 편찬 과정에 대해 알고 싶다.

"10년 전에 나온 <20년사>의 필진은 전TBC, KBS PD인 정훈 선배(전 한국DMB 회장), 당시 KBS PD인 장해랑 선배(현 EBS 사장),그리고 필자였다. 이번에는 2017년 6월 13일에 ‘6월항쟁 30년, PD연합회 30년’이라는 특별좌담을 하면서 30년사를 위한 기획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사회 정길화, 참석자 김력균 OBS PD,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박재철 CBS PD협회장, 오행운 MBC PD, 이강택 KBS PD, 이채훈 PD연합회 정책위원, 전규찬 한예종 교수 등. 가나다순). 이후 초안 집필자로 20년사에 참여했던 필자가 지명됐다. 피할 수 없는 연(緣)이자 업(業)이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초안 작업 이후 이채훈 PD가 탁월한 편집자로서 확실한 매조지를 했다.

집필에 앞서 20년사 때와 같이 편년체로 할 것인가 아니면 주요 쟁점과 이슈 중심으로 각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지 않았다. 논의 끝에 각 회장 집행부순, 즉 편년체로 가기로 했다. 전술(前述)했듯 이명박근혜 9년 동안의 방송장악과 현장 방송인들의 능욕과 수난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지난 20년간 새로운 10년의 대비가 필요했다. 그러면서 기왕의 20년사에 대한 반성적 서술이 요구되었다. 이번에도 1927년에서 1987년까지는 전사(前史)로 해서 별도로 기술됐다. 정훈 전 KBS PD가 10년 전에 집필한 내용을 가감하고 주석을 더했다. 1927년에서 1987년까지의 전사(前史), 1987년에서 2007년까지의 20년사 등 지나간 80년사를 사실상 재집필했다."

-20년사에 추가된 최근 10년사(2007-2017)가 주된 내용이라고 들었다. <30년사> 안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새로 발간된 이번 <30년사>의 핵심은 2007년에서 2017년까지다. 시련과 촛불로 명명된 이 10년간은 21대에서 31대 집행부까지 해당되는데 1. MB정권과 방송농단의 시발(始發) 2. 억압의 제도화 3. ‘MB방송’ 시대의 그늘 4. 어둠의 손 블랙리스트 5. 시련의 공영방송 6. 수난과 인고(忍苦) 7. “방심위를 해체하라!” 8. 탐사저널리즘의 복원을 위하여 9. 모순의 축적 10. 드디어 촛불혁명 11. 돌마고, 이제는 재건이다 등의 순으로 이루어졌다. 분량으로도 1987~2007년의 20년과 2007~2017년의 10년이 거의 동일한 비중이다.

집필 초기에는 <미디어오늘>, <PD저널> 등 기사와 참고도서만 잔뜩 쌓아놓고 원고에 손이 잘 안 붙어 고생을 했다. 9월 초 파업 때 본격적으로 시작해 가을 단풍을 보는가 했는데 눈 내린 겨울에 들어서 비로소 마무리했다. 파업 시에 도서관을 오가며 골방에 칩거해 나름대로는 집필투쟁을 한 셈이다.

원고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EBS에서는 게이트에 연루된 사장이 퇴진하고 장해랑 사장이 새롭게 취임했다. SBS에서는 사주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리셋 SBS’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사장임명동의제가 도입됐다. MBC에서는 파업 투쟁 이후 방문진의 구성이 바뀌면서 해직PD였던 최승호 PD가 사장으로 선출됐다. 다만 KBS는 원고를 마감하는 12월 말까지 KBS이사회나 경영진이 요지부동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30년사’ 책이 나온 날인 1월 22일에 KBS이사회에서 고대영 사장의 해임안이 가결되었다. 집필을 마치고 책이 발간되니 전과 후가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초안이 원고지 2,300장 정도 나왔는데 전사와 20년사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최근 10년사에 주력하도록 한 것은 이채훈 편집자가 착안한 ‘신의 한 수’였다. 여기에 독립 PD로 아프리카 남아공에서 유명을 달리한 고 박환성, 김광일 PD 그리고 제작현장의 열악한 노동권을 드러낸 고 이한빛 PD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것은 이번 30년사에서 특기할 만하다."

(편집을 맡은 이채훈 PD(왼쪽)와 집필을 담당한 정길화 PD)

-말씀하셨듯이 지나간 30년에 대한 기록과 반성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망을 위한 것이다. 어떻게 보는가? 지상파방송의 미래와 PD연합회의 위상은? 그리고 PD들의 미래는?

"지나간 30년은 지상파방송이 적어도 미디어적으로는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슈라면 권력과의 길항관계가 주요한 문제였다. 도구주의적 언론관을 지닌 역대 정권은 방송을 전리품처럼 편의적으로 방편적으로 대해 왔다. 이명박근혜 9년은 그것이 가장 극악한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현장의 방송인들도 이에 대한 수난과 저항으로 대처해 왔다. 그런 와중에 공영방송의 거버넌스와 같은 제도적인 문제를 정립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방송이 시청자인 국민들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는 점이다. 권력의 엄혹함과 그들의 후안무치를 먼저 규정해야 옳겠으나, 방송 스스로 혹은 방송인들이 권력에 다가가 순치와 굴종을 헌상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권력이 다소 허약할 때는 자사이기주의를 앞세우면서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지 않았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성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앞으로 ‘두 번째 30년’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무임승차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PD들이 탈 수 있는 차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방송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됐다. 지난 10년간 방송환경이 급격히 변했다. 흔히 하는 말로 생태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디지털 기술발달로 인한 융합은 미디어빅뱅으로 나타났고 기존의 지상파 위주의 실시간 방송을 해체했다. 콘텐츠 제작자를 자임해온 PD들은 우월적 체제 안에서 기득권을 누리다가 급작스럽게 달라진 생태계의 변화를 뒤늦게 체감하고 이미 혼란에 빠져 있다. 일찍이 지상파를 벗어나서 영역을 확장한 PD나 해고자가 된 PD들이 역설적으로 급변하는 방송환경에 대처를 잘하고 있다. 지상파방송이 사양화의 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방송사가 어떻게 될지, 한국PD연합회의 위상과 PD들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쉽사리 예견할 수 없다. 그 미래상이 밝은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자성이 지나쳐 너무 비관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지상파 PD들의 기여도나 공덕으로 말할 만한 것은 없는가.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한다. PD들에게 어떤 시기가 성공적이었는지의는 그 무렵에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방송했느냐로 평가할 수 있다. 동시대 PD들의 노력과 고민은 자신이 연출한 프로그램으로 수렴되고 통합된다. 언론직능단체로서 PD연합회의 활동도 궁극적으로 회원인 PD들의 프로그램 제작 여건 개선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외풍이 사납고 의심스러워도 프로듀서들은 현장을 지키고 좋은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성원에 보답하려 노력했다. 역대급 다큐멘터리와 PD저널리즘은 지상파방송이 이룬 성과다.

1997년 이후 20여 년간 진행된 한류(韓流) 현상에 대해서는 이 땅의 PD들에게 일정한 평가를 보내도 좋지 않겠는가. 그동안 국내에서 우리끼리(?) 치열한 경쟁을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제적으로 소구력이 있는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장금>, <겨울연가>,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굿닥터>로 이어지는 한류는 이 땅의 방송PD들이 개척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케이팝도 지상파방송과 무관하게 나온 것은 아니다. 지나간 30년사의 궤적은 PD회원들이 오로지 PD정신에 기반을 두고 프로그램 현장에서 치열할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사진= 남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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