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뉴스=윤하원 기자] '난해시', '무의미시' '현대 선시' 등으로 분류되는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함으로써한국 시단의 지평을 넓혀온이승훈 (사진,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시인이 16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6세.

194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등단했다. 한양대 대학원과 연세대 박사과정을 졸업했고, <현대시>동인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기존의 언어 관습과 형식을 거부하고, 시적 대상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초기에는 온건한 메타포를 추구했으나 점차 난해시 쪽으로 옮겨갔다. 그의 이름 앞에는 아방가르드(전위) 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그는 문장과 문장(혹은 대상과 대상)의 논리적 연결고리를 과감하게 끊어버림으로써, 자본주의의 물신성(fetishism)을 알레고리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말년에 금강경을 만난 뒤에는아방가르드와 불교사상을결합시켜 '현대 선시(禪詩)'를 탄생시켰다. 2년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이제 시는 시를 모르고, 나는 나를 모른다”고 말했다.

<사물들>, <당신들의 초상>, <당신의 방> 등 20권이 넘는 시집을 남겼으며 현대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제1회 이상 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서울시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발인은 19일.

사물 A

이승훈

사나이의 팔이 달아나고 한 마리 흰 닭이 구 구 구 잃어버린 목을 좇아 달린다. 오 나를 부르는 깊은 명령의 겨울 지하실에선 더욱 진지하기 위하여 등불을 켜놓고 우린 생각의 따스한 닭들을 키운다. 닭들을 키운다. 새벽마다 쓰라리게 정신의 땅을 판다. 완강한 시간의 사슬이 끊어진 새벽 문지방에서 소리들은 피를 흘린다. 그리고 그것은 하아얀 액체로 변하더니 이윽고 목이 없는 한 마리 흰 닭이 되어 저렇게 많은 아침 햇빛 속을 뒤우뚱거리며 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