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뉴스=이여동 기자] 부산 시단의 거목 오정환(사진) 시인이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16일 별세했다. 향년 71세.

(16일 별세한 오정환 시인)

오 시인은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와 동아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부산작가회의와 부산민예총 회장을 역임했다.

자신이 남긴 시편들처럼 담백한 삶을 살았던 오 시인은 생전에 “좋은 시는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시라고 생각한다. 시란 자신의 인생에서 온갖 것을 가라앉히고 가장 맑은 물, 정수를 뽑아내는 것이다”라는 시관(詩觀)을 밝히곤 했다.

30년간 동성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으며 대학 강단에서는 문예창작을 가르쳤다. 2016년 시 해설집 <봄비, 겨울밤 그리고 시>를 내놓은 데 이어 ‘부산시울림시낭송회’를 이끌며 시인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등 최근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시집으로 <맹아학교> <물방울 노래> <푸른 눈>이 있다. 이순(耳順)을 넘겨펴낸 시집 <노자의 마을>로 2011년 제11회 최계락문학상을 수상했다.

빈소는 부산 동아대학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18일 오전 9시30분. 부산작가회의와 부산민예총이 힘을 합쳐 조사, 조시, 진혼무, 영상 등을 마련할 예정이다.

모과

오정환

칼로 빚은 듯

목공예 수품(手品)같은 줄기

아직 선명한 칼자국 그대로 남아있다.

서늘한 칼바람에

잎이란 잎 죄다 날려 보내고

마침내 칼날 삼킨 듯 비장하게 서 있다.

차마 다시 잎 피울 것 같지 않은

속살마저 모두 드러낸 빈 몸통 위에

어언 주먹보다 튼실한 열매

거짓말처럼 매단다.

뼈만 남은 내 가슴 한 켠에

노랗게 무르익어 가는

한(恨) 덩어리 하나 자라고 있다.

ydlee@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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